미 의원, 출장비로 아들 티셔츠 샀다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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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의회 의원들이 해외 출장에 나설 경우 하루에 제공받는 경비는 최대 250달러(약 28만원)다. 의회가 정한 규정이다. 이 경비에는 숙박료, 하루 세 끼의 식사, 교통 요금과 팁 등이 포함된다. 독립기구인 미 의회 윤리사무국이 최근 6명의 연방 하원의원이 이 경비 중 일부를 사용하지 않았으면서도 반납하지 않았거나,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문제 삼고 나섰다. 이들이 1회 출장에서 개인적으로 유용한 돈은 105~395달러(약 12만~44만원)였다. 닷새 출장 기준으로 하루 20~55달러(약 2만2500~6만2000원)를 개인적으로 쓰다 망신을 당한 셈이다. 그만큼 미국 의회의 투명성이 높고 윤리 기준이 엄격하다는 이야기다.

 미 윤리사무국이 윤리위원회 패널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앨시 해스팅스(Alcee Hastings·민주당·플로리다) 의원은 2008년 영국·카자흐스탄·파키스탄·이탈리아 출장을 다녀오면서 459달러(약 52만원)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등 모두 9회에 걸쳐 2811달러(약 316만원)를 챙겼다. 로버트 아더홀트(Robert Aderholt·공화당·앨라배마) 의원은 윤리사무국 조사관들에게 “하루 경비로 받은 돈에서 아들의 티셔츠와 인형, 엽서와 지갑 등을 샀다”고 고백했다. 조 윌슨(Joe Wilson·공화당·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은 조각상과 깃발 등 터키에서 산 기념품들을 자신의 의회 사무실 책상에 놓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윤리사무국은 2008년부터 3년간 의원들의 해외출장 경비 내역을 샅샅이 살폈다. 의원들이 제출한 일정표를 기준으로 출장 중 외국 정부 등으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았는데도 의원이 식사비를 냈다고 주장했는지를 따져 볼 정도였다. 이런 작업을 통해 6명의 의원이 30회의 출장에서 모두 7575달러(약 852만원)를 공적인 업무 외에 사용했다고 판단하고 윤리위원회 차원의 본격적인 조사를 권고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워싱턴 포스트(WP) 등은 의원들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면서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해당 의원들은 “해외 출장 갈 때 제공되는 경비의 의미를 관행적으로 사적인 여행과 마찬가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을 뿐이며, 잘못된 행동을 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의원들로 구성된 미 하원 윤리위도 111대 의회가 4일로 종료된 만큼 “큰 잘못으로 보기 어렵다”며 위원회 차원의 조사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윤리사무국은 “전체 의원의 35~40%만이 해외 출장 중 남은 돈을 반환하는 실정”이라며 계속해서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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