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글로벌 인재 되는 법] ‘토종’ 구글러 김태원씨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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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구글러’ 김태원씨는 다양한 체험으로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황정옥 기자]

서울 강남 청담초·청담중·청담고·고려대 졸업, 글로벌기업 구글 광고전략 담당자. 김태원(31)씨의 이력이다. 언뜻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고생 모르고 곱게만 자란 부잣집 아들’인 것 같지만, 김씨는 학창 시절 반지하방에서 어렵게 살며 장마철이면 방에 차오른 물을 퍼내곤 했다.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 탓에 유학은 꿈도 못 꿨다. 그 흔한 해외연수 한번 다녀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글로벌 기업 구글에, 그것도 경력직만 뽑는 분야에 대학 졸업예정자 신분으로 도전해 당당히 합격했다. 새해를 맞는 청소년들의 롤 모델(role model)로 손꼽히는 그를 만나 ‘글로벌 인재’의 조건에 대해 들었다.

“머릿속에 지구본이 들어 있다”

“한국을 떠나 공부해 본 적이 없지만 제 정신만은 전 세계를 누구보다 신나게 휘젓고 다녔죠.” 학창시절 김씨의 인터넷 ‘즐겨찾기’ 목록엔 하버드와 예일 같은 세계적인 대학이 가득했다. 홈페이지를 뒤지며 다른 나라 학생들은 지금 무엇에 관심을 두고 어떤 것을 고민하는지 늘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버드대 학생보다 하버드대 홈페이지를 더 샅샅이 뒤졌을 거예요. 그들과 만나 자웅을 다툴 날을 생각하며 꿈을 키웠던 거죠.”

어느 날 그는 유튜브(세계적 동영상 전문 사이트)에서 우연히 한국 꼬마 여자아이가 배꼽티를 입고 성인 댄스가수의 춤을 따라 추는 영상을 봤다. ‘제법인데?’라고 생각하던 그는 외국인들의 댓글을 읽고 놀랐다. ‘이건 명백한 아동학대다’ ‘부모의 교양수준이 의심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영상을 보고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구나.’ 그후 김씨는 유튜브에서 관심 분야의 동영상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먼저 정리한 후, 댓글을 읽으며 세계인들의 생각을 읽었다. 이 습관 덕분에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

“제 머릿속에는 커다란 지구본이 들어 있어요. 이 지구본을 바삐 돌려가며 세계의 흐름을 읽는 데 신경을 썼죠.” 김씨는 물리적으로 처한 환경을 넘어 전 우주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글로벌 마인드의 기본이라고 했다. 신문을 볼 때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이 국내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지역의 뉴스에도 관심을 뒀다. 예를 들어 중동사태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이 일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고 꼭 연결지어 생각했다.

해외에서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방법으로 그는 누구보다 세계적 흐름을 빨리 깨달았다. 해외연수를 가지 않고도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생각의 다양성도 자연스레 체득해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

나만의 스토리, 남다른 생각이 힘

“자신을 차별화시키는 데는 ‘나만의 스토리’가 가장 좋은 스펙이죠.” 김씨의 전공은 경영학이나 광고학과는 무관한 사회학이다. 스펙도 일관성 없이 다양했다. 이런 그가 구글의 글로벌광고전략팀에 들어간 비결은 입사지원서에 녹여낸 ‘열린 태도’라는 스토리였다. 남들이 스펙을 자랑할 때 그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새로운 생각에 잘 적응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임을 강조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시대에 꼭 맞는 인재상이라고 어필했다.

김씨가 늘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다. 고3때 대학입시에서 실패를 맛봤다. 좌절의 쓴 뿌리를 곱씹으며 이불 속에서 꼼짝 않고 누워 슬퍼하다 문득 ‘아무리 아파하고 힘들어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털고 일어나기로 했다. “좌절을 겪고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온 힘을 다해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김씨는 다음해 도전한 입시에서 고려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이때의 기억은 지금까지 그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자양분이 됐다.

“목표를 향한 도전과 성취,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들과 태도의 변화까지 차곡차곡 모아둬 자신만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만드세요. 입시와 취업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자기소개서를 남과 다르게 쓸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에게 청소년을 위해 글로벌 인재를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했다. “영어만 잘한다고 글로벌 인재인가요. 머릿속에 누구보다 큰 지구본을 넣고 바삐 돌리는 사람,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힘을 갖춘 사람이 바로 글로벌 인재죠.”

글=설승은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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