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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 뚝 떨어진 돈 5억, 창작자들 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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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첫 번째 뮤지컬인 ‘모비딕’의 한 장면. 배우가 악기를 연주하다 그 악기를 들고서 연기하고, 노래도 한다.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이다. [CJ아지트 제공]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정동 CJ 아지트. 스튜디오나 연습실처럼 생긴 자그마한 공연장에 150여 명의 관객이 몰렸다. 빈자리가 없었다. 몇몇 뮤지컬 제작자나 투자자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두 번째 작품인 ‘사랑을 포기한 남자’의 공연 현장이다.

 출연진들은 대부분 대본을 들고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아직 제작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식은 새로웠다. 우선 영상을 많이 썼다. 무대에서 배우가 뛰면, 그게 흔들리는 영상과 조합되는 식이었다. 남자 배우 단 두 명만 나왔지만, 목소리만 연기하는 배우가 세 명이었던 점도 신선했다.

 이날 자리가 특별한 건 침체에 빠진 한국 뮤지컬의 활로 찾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사실 뮤지컬은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정부 지원 측면에선 ‘왕따’나 다름없다. 우선 문화체육관광부에선 무관심하다. 연극·무용·클래식과 같은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예술이라는 이유에서다. 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 등을 적극 지원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뮤지컬은 무대예술인 터라 우리 영역이 아니다”라며 모른 척 한다. 양쪽에서 다 치이는 모양새다.

 이런 현실에 구원 투수가 나섰다. CJ 문화재단이다. 1년에 5억 원을 들여 신예 뮤지컬 창작자를 발굴하고, 작품을 올리게끔 장(場)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른바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다. 민간 차원의 뮤지컬 진흥책이다. 참가한 창작자들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며 환영하고 있다.

 ◆배우가 악기도 연주한다=이보다 한 달 전쯤 공연된 첫 번째 작품인 ‘모비딕’은 더 실험적이었다. 출연 배우 모두 무대에서 악기도 연주하고, 연기도 했다. 피아노·바이올린·첼로·더블베이스 등 실내악단에 버금가는 악기 편성이었다. 한국에선 최초로 시도되는 ‘액터-뮤지션’(Actor-Musician) 뮤지컬이다. 클라리넷을 연주하다 그 악기를 들고서 무대 중앙으로 나와 망원경으로 설정하는 식이었다. 관객 백혜미(33)씨는 “완성도는 조금 미흡하지만, 주류 뮤지컬에선 보기 힘든 낯선 형식이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모비딕’의 작가이자 연출자는 뮤지컬 평론가로도 유명한 조용신(43)씨다. 조씨는 “흔히들 창작자에겐 데드라인과 돈만 있으면 뮤지컬 나올 수 있다고 한다. 내 머릿속 공상을 이렇게 무대에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게 기쁠 따름”이라고 말했다.

 ◆“마음속 꿈틀거림을 꺼내줘”=‘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서 뮤지컬 한 편 올리는 데 보통 3000만원 이상 든다. CJ 문화재단이 100% 부담한다. 연습실·진행비 제공은 물론 전단지 제작 등 홍보도 해준다. 그러면서도 작품에 대한 저작권은 창작자들이 갖는다. 또 단순히 한번 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성 극작가·작곡가 등에 의한 ‘전문가 모니터링’을 진행한다. 개선점을 제시해 주는 거다. 프로듀서와 투자자도 연결시켜 준다. ‘모비딕’은 오는 7월 두산아트센터에서 정식 공연될 예정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CJ 문화재단 김선아 과장은 “한국에서 뮤지컬 창작은 대개 제작사가 원하는 걸 만드는, 주문 생산이 많았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마음속 진짜 얘기를 창작자가 꺼내놓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자는 취지다. 한국 뮤지컬에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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