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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컴·티맥스, 벤처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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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이홍구 한글과컴퓨터 대표(左), 이종욱 티맥스소프트 대표(右)


2011년 새해다. 지난해 유례 없는 격랑을 헤쳐 온 정보기술(IT) 세상은 올해 더 큰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 ‘아이폰’ 등 본격적으로 상륙한 해외 IT 기기와 서비스에 밀려 지난 1년 휘청였던 국내 IT업계는 올해는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SW) 업계는 아이폰발 지각변동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맞았다. 국내 대표 SW 기업인 한글과컴퓨터·티맥스소프트 두 곳을 들여다봤다. 두 회사는 지난해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올해 재기를 노리고 있다.

◆한글과컴퓨터= “지난 20년간 한글과컴퓨터는 국민 기업이었습니다. 이제 국민이 도와주는 기업을 넘어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우뚝 서겠습니다.”

 이홍구(54) 한글과컴퓨터 신임 대표는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삼성동의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한글과 컴퓨터 임직원 250여 명과 소프트포럼 임직원 등 400여 명을 대상으로 연 ‘소프트웨어인 자선의 밤’에서 “미래의 한컴은 현재의 한컴과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IBM 부장과 컴팩코리아 전무, 한국HP 부사장, 델코리아 사장 등을 역임한 그는 지난달 공모를 통해 한글과컴퓨터 사장에 취임했다. 대주주인 김상철 소프트포럼 회장은 이날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며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한글과컴퓨터는 최근 선보인 웹 오피스 프로그램 ‘싱크프리’를 중심으로 모바일 및 클라우드 컴퓨팅 등 신규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2011년 전략을 짰다.

 한글과컴퓨터는 지난해 호된 시련을 겪었다. 2009년 이 회사를 인수한 셀런의 대표이사의 횡령으로 지난해 4월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리면서 1년 만에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지난해 9월 국내 보안업체인 소프트포럼의 김상철 회장이 640억원에 한글과컴퓨터를 사들였다. 창업 이후 20년 동안 8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한글과컴퓨터는 서울대 동아리 모임에서 의기투합한 이찬진 현 드림위즈 대표와 김택진 현 엔씨소프트 대표, 우원식 현 엔씨소프트 전무 등이 1989년 개발한 ‘아래아한글’을 기반으로 90년 설립됐다. 한때 젊은 벤처인들의 도전의 상징이었다. 98년 외환위기로 한글과컴퓨터가 어려워지자 ‘한글 살리기 운동’이라는 국민 캠페인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인수와 매각이 반복되고 대표이사의 횡령·배임 사건에 거듭 연루되면서 한글과컴퓨터는 어두운 벤처기업의 이미지로 추락했다. 한글과컴퓨터의 좋았던 브랜드 이미지와 현금 동원력을 노린 투기세력의 먹잇감으로 오르내린 것이다.

 새로 한컴을 인수한 소프트포럼이 한글과컴퓨터의 도약을 이뤄낼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이다. 소프트포럼은 3년 후부터 재무적 투자자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주당 1만3600원에 한글과컴퓨터의 주식을 매수하기로 풋백옵션을 맺었다. 현재 한글과컴퓨터의 주가는 5000원대다. 이 주가를 지금의 3배로 올리지 않으면 다시 새 주인을 찾아나서야 한다. 현대증권 임상국 애널리스트는 “모바일 혁명은 SW업계에 기회가 될 수 있어 한컴이 이 흐름을 타고 새로운 도약에 성공하면 그 정도의 주가 상승은 어렵지 않다”면서도 “국내 시장만 바라보고 안주하면 급변하는 IT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티맥스소프트= “얼마 전 신입사원 8명을 뽑았습니다. 회사를 믿고 들어와 준 막내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이종욱(56) 티맥스소프트 대표는 지난해 12월 8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때 2000명이 넘던 직원 수가 1년 사이에 290여 명으로 줄어든 기억을 되살리면서다. 한글과컴퓨터와 함께 대표적인 토종 SW 기업인 티맥스소프트에도 지난해는 혹독한 시련의 해였다. 수개월치 월급이 밀리고 회사 사정은 날로 악화되자 직원들은 하나 둘 회사를 떠났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회사는 지난해 6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한 데 이어 10월 채권단과 2013년까지의 경영 정상화 계획이행 약정서를 체결했다.

 지난해 4월 취임한 이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SW 기업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선언했다. 그는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제는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엄청난 투자를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던 ‘티맥스윈도’ 개발부문 매각 ▶대기업과 힘겹게 경쟁하던 기업시스템(SI) 사업 정리 ▶해외사업 구조조정 및 대규모 수주 성공 등이다. 또 유일한 자산이던 경기도 판교의 500억원짜리 토지를 매각해 빚을 일부 갚아 이자 부담을 덜기도 했다. 특히 오랫동안 공들인 미국·일본 등지의 해외 사업이 호조를 보이면서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했다. 부실을 털어낸 만큼 다시 강점인 미들웨어(기업 내 컴퓨터 시스템 운영을 원활하게 해주는 중계 SW) 사업에 전념해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국내 미들웨어 시장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던 티맥스소프트의 사정이 나빠진 것은 창업자인 박대연 회장의 도전이 실패하면서다. 국산 1호 PC 운영체제(OS)인 티맥스윈도의 개발을 목표로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또 SI 사업을 시작하면서 미들웨어의 주요 고객인 대기업 SI 관련 기업들과 등을 지게 된 것도 패착이었다.

박 회장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물러났다. 티맥스소프트가 시련을 딛고 다시 살아나서 간판 토종 SW업체로 다시 설 수 있을까. 주변에선 새로운 경영진과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임문영 IT 컨설턴트는 “국내에도 벤처기업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재기하는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도전이란 언제나 무모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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