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제빵왕’ 키우는 서서울생활과학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남을 위하는 마음이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은 네 자신을 즐기는 마음을 위함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들어야 할 빵이다.”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대사 중 하나다. 박한진(서울 숭실중3)군은 이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 ‘행복한 빵’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한진군이 지난달 20일 올 3월에 입학할 예정인 서서울생활과학고를 미리 찾았다.

내신 100%로 선발…상위 35%이상 합격권
 
 한진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냉장고를 뒤져 ‘뚝딱’ 간식을 만들어 내놨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TV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을 보고 파티셰(과자나 케이크 등 제과류를 만드는 요리사)인 주인공이 케익을 만드는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때부터 제빵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일본에 요리 유학중인 사촌형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후 한진군은 집에서 틈틈이 과자를 구웠다. 파티셰라는 꿈을 위해 일반 인문계고가 아니라 조리학과가 있는 특성화고 서서울생활과학고로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이 학교는 조리학과, 특히 제빵분야가 특화돼 있다. 조리학과에 입학하면 3년 동안 한식과 중식, 양식, 일식, 제빵, 제과 등 여섯 분야에 대한 이론과 실습을 두루 경험하게 된다. 졸업전 모든 학생은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올 5월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땄다는 이 학교 재학생 박은추(조리학과 3)군은 “제빵학원을 다니면 보통 한 달 수강료가 50만원이 넘는다”며 “자격증 취득은 학교 실습수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료비 문제로 2명또는 4명이 한 조로 실습하는 학교도 있는데 우리학교는 1인 단독 실습이 원칙”이라며 “요리실습은 우리 학교가 최고”라고 덧붙였다.

 특성화 고교라 입학생 성적이 비교적 낮을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이 학교는 내신 100%로 선발하는데, 조리학과는 입학생 내신이 가장 높다. 한진군의 중학교 내신은 상위15%. 함께 학교를 찾은 박나희(서울 경인중 3·서서울생활과학고 조리학과 입학예정)양의 내신도 상위 11%다. 2011학년도 이 학교조리학과 합격생 내신 커트라인은 약 35%였다. 지난달 6일 마감한 서울시 특성화고 원서접수 결과 조리학과에 대한 선호는 더 뚜렷이 나타났다. 제빵 소재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조리학과의 인기도 함께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 학교에 재학중인 김한솔(조리학과 2)군은 “입학하면 요리만 할 것 같지만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은추군도 “성적이 비슷한 친구들이 들어와 경쟁하니 내신관리가 쉽지 않은데다 다들 목표의식이 확실해 요리와 공부 모두에 열심이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도높다. 지난해엔 졸업생의 3분의 2가 대학에 진학했다. 학교는 방과후교실로 수능 대비반을 운영해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돕는다. 지성과 기술을 겸비한 요리 장인을 길러내려는 것이다.

 유학반도 운영 중이다. 2005년에 시작된 유학반은 매년 7~8명을 미국 주립대로 꾸준히 진학시키고 있다. 토플을 비롯한 유학 준비 수업이 3년 동안 진행된다.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꿈꾸는 나희양이 이 학교를 선택한 것도 유학반 때문이다. 선배들을 따라 들어간 유학반 교실에선 유학반 학생들이 학교에서 지급한 각자의 넷북으로 미국 드라마를 보며 영어를 익히고 있었다. 나희양은 “입학 후 유학반에 들어가 공부해 세계를 무대로 한 파티셰가 되는게 꿈”이라고 말했다.
 
연간 1억2천여만원 매출에 빛나는 제빵왕의 산실

 은추군과 한솔군은 “우리 학교 조리학과의‘비장의 무기’를 보여주겠다”며 후배들을어디론가 이끌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서서울베이커리. 대형 오븐에서 빵이 쉴새없이 구워져 나오고 있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흰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제빵왕’들이 반죽을 치대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이 학교 조리학과 학생들. 호텔 베이커리 경력을 가진 전담 교사가 상주해 학생들을 밀착지도한다.

 서서울베이커리는 서울시교육청이 지정한 학교기업이다. 학생들이 만든 빵은 학교앞 매장에서 판매된다. 방부제를 넣지 않고 좋은 재료만 써 맛도 좋다. 입소문을 타고 근처 학교 매점으로 납품을 하고 각급기관의 행사가 있을 때 단체주문도 받는다. 만드는 빵도 100종류가 넘는다. 여기서 1년에 벌어들이는 돈은 1억 2000여만원. 이날은 초코소보루빵 700개가 단체주문으로 들어왔다.

 ‘삑삑‘하는 소리가 나자 은추군이 오븐을 열었다. 능숙한 솜씨로 꺼낸 철판 위엔 탐스런 초코소보루빵이 줄지어 서 있었다.

 빵만 파는 게 아니다. 서서울베이커리는 대학도 보낸다. 은추군은 한국관광대 조리학과에 수시전형으로 합격했다. 조리학과 이현국 교사는 “서서울베이커리는 한국관광대와 MOU(양해각서)를 맺어, 학교기업에서 일하는 학생 중 우수 학생을 매년 2명씩 선발해 제빵 특기자로 한국관광대에 진학시킨다”고 말했다.

 은추군은 “고1 겨울방학때부터 여기서 일했다”며 “빵의 기본기부터 탄탄하게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수업료 면제 등 장학금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날 나희양과 한진군은 선배들의 지도아래 반죽을 손에 쥐고 단팥빵을 만들어봤다. “팥앙금을 넣기 전에 반죽을 손바닥으로 꾹 눌러서 가스를 빼야해.” 한솔군의 설명에 따라 손을 놀리는 두 후배의 모습이 제법 진지했다. 한진군은 “입학하는 3월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며 “열심히 노력해서 드라마 속 김삼순이나 김탁구 못지않게 ‘행복한 빵’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바로 미래의 제빵왕이었다.

[사진설명] 서서울생활과학고의 학교기업 ‘서서울베이커리’에서 박한진군과 김나희양(가운데)이 박은추(제일 왼쪽)군과 김한솔(제일 오른쪽)군에게 단팥빵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설승은 기자 lunatic@joongang.co.kr 사진="김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