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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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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2시 30분. 미국 상원의 민주당 의원들은 공화당과의 흥정이 이뤄진 것으로 생각했다. 톰 대슐 원내총무로부터 그가 트렌트 로트 공화당 원내총무와 방금 합의를 보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슐은 상원 부결이 확실시되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안이 표결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로트 총무에게 민주당측이 내년 선거에서 그 조약을 이슈로 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슐의 착각이었다. 로트는 그날 늦게 제시 헬름스 상원 외교위원장과 존 카일(애리조나州)
의원 등 공화당 강경파들을 만났다. 그 두 의원은 핵실험 금지가 확인과 실행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그들은 로트가 민주당과의 흥정에 나설 경우 보수파들이 그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벼르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로트는 13일 일찍 대슐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고는 저녁에 비준안을 상원 표결에 부쳤다. 결국 비준안은 51 對 48로 부결됐다(51표 모두 공화당 표였다)
. 미국 상원이 1920년 국제연맹 창설 비준안을 부결시킨 이래 가장 극적인 국제조약 비준 거부였다.

격분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다음날인 14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클린턴은 “미국민과 세계의 안전에 미치는 위험을 고려할 때 이번 표결은 최악의 파당 정치”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그것을 ‘新고립주의’라 부르며 세계에 ‘좋을 대로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꼴이라고 말했다.

세계 지도자들과 언론들도 일제히 상원을 비난했다.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고, 러시아 외무부는 “매우 우려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영국의 더 타임스紙는 이번 표결을 “미국의 정치·도덕적 권위에 대한 중대한 타격”이라고 일갈했고, 프랑스의 르몽드紙는 “이제 세계는 더욱 불안해졌다”고 썼다. 지난해 핵실험을 강행했다가 미국측으로부터 내년 1월로 예정된 클린턴 대통령의 방문 전에 CTBT에 서명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인도에서는 미국 상원의 표결이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표결 연기를 주장해온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前 美 국가안보 보좌관은 “이번 표결로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세계적인 파장으로 가려지고는 있지만 미국 상원의 CTBT 비준안 부결에는 몇가지 두드러진 배경이 있다. 첫째는 미국 정계의 ‘상대 탓하기’ 게임이다. 클린턴과 그의 지지자들은 상원의 이번 결정을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파당주의의 단면으로 간주한다(진보정책연구소의 윌 마셜이 말한 ‘클린턴에 대한 맹목적 증오’가 파당주의를 부채질한다)
. 조 바이든 민주당 상원의원(델라웨어州)
은 “그같은 증오심에 놀랐다”고 털어놓었다. 찬표를 던진 4명의 공화당 이탈자 중 한 명인 고든 스미스 의원(오리건州)
조차 비준안이 부결된 데는 “클린턴에 대한 적개심이 큰 몫을 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오늘날 워싱턴에서는 그 누구의 동기도 단순하거나 순수하지 않다. 민주당은 여러 달 전부터 CTBT 비준안 표결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백악관은 거의 수수방관했다. 클린턴도 표결 몇 시간 전에서야 그 문제에 직접 개입했다. 결국 로트 총무가 민주당측에 협상카드를 내보일 것을 요구했지만 대슐에겐 이렇다 할 만한 카드가 없었다. 물론 국가안보 문제를 두고 정치 게임을 벌이는 로트를 나무랄 수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라고 정치 게임을 초월했거나 내년 선거에서 그 문제를 쟁점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민주당 전략가는 “이번 표결은 우리의 상원 재탈환에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스코크로프트는 이번 표결에 대해 “편협한 파당정치 게임의 한 예”라고 꼬집었다.

워싱턴이 당파를 떠난 진지한 정치의 場이었다면 과연 CTBT 비준안이 가결됐을까. 이 문제에는 상원에 대한 비판세력 대다수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미묘한 배경이 깔려 있다. 신망 높은 민주당 인사를 포함해 그 조약에 반대한 많은 전직 고위 공직자들이 한결같이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증오감으로 CTBT 비준에 반대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조약이 여러 나라들에 의미하는 바는 각기 다르다. 일부 국가들은 그 조약의 진정한 목적이 단순한 핵실험 금지가 아니라 핵폭탄 보유국들이 이미 보유한 핵무기를 못쓰게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핵무기 감축을 강요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미국 등 핵보유국들은 그런 해석을 부인하지만 아직 초보단계에 있는 컴퓨터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기술로 정확한 핵폭발을 가상실험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지난 41년 간 미국 정부가 핵실험 금지를 지지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것이 미국 국가안보의 최우선 목표인 핵확산 방지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핵무기 기술이 개발된 지 50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현재 많은 국가들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과학자와 기술자를 보유하고 있다. CTBT는 그들의 핵무기 제조 능력을 제한하는 포괄적 수단의 일환이다. 미사일이나 현대식 폭격기에 걸맞은 폭탄을 제조하려면 실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약에 서명만 하고 이를 무시하는 국가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그들은 상당한 포기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가 그 조약을 지지해온 두번째 이유는 더 미묘하다. 많은 선진국들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또 브라질·아르헨티나·남아공을 위시한 다른 나라들은 핵야망을 스스로 포기했다. 어느 경우든 그들 나라가 핵무기 개발에 나서지 않은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강력한 핵국가인 미국이 핵무기 억제를 위한 다자간 협조 노력을 선도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약 두 세대에 걸쳐 대량살상 무기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수많은 조약을 통해 그런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 왔다. CTBT를 비판하는 미국인의 경우 그것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상징성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미국 밖에서는 그 상징성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선한 나라임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원의 표결은 그같은 판단에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CTBT 부결에 따른 진정한 위험은 핵전쟁 발발 가능성이 갑자기 커졌다거나, 그간 핵무기를 숨겨온 여러 나라들이 핵실험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더이상 미국을 국내 정치보다 국제사회를 중시하는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편 클린턴은 상원의 표결 결과를 일정한 패턴에 따른 것으로 본다. 그는 유엔 분담금 납부를 거부하고, 국제문제에 대한 예산 배정에 지나치게 인색하며, 지구온난화 추세를 막는 데 미국이 맡아야 할 역할을 부인하는 세력들이 ‘新고립주의’의 패턴을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런 고립주의자들이 “미국은 노력적인 면에서나 본보기로서 지도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으며 우방이 필요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미스 역시 공화당이 어떠한 국제협약도 가치가 없다고 보는 세력의 지배 아래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스미스는 “적어도 단기적으로 미국은 혼자 다른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던지고 있다”며 “그 결과는 앞으로 수년 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트 총무는 그런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요즘 같은 세계에서는 아무도 고립주의자가 될 수 없으며 그런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함께 기존 외교정책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원칙들이 도전받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냉전 초기 해리 트루먼 대통령(민주당)
은 당시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였던 아서 밴든버그와 세계문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확대하는 데 초당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외교정책 주도층의 그런 의견일치는 베트남전 이후 사라졌다. 그에 따라 70년대 말과 80년대에 이르러 아프리카와 중앙 아메리카의 점증하는 공산주의 세력을 억지하는 방법에 대한 미국 의회의 논의는 파당적인 분열로 진통을 겪었다.

그러다가 미국이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에 맞닥뜨리면서 과거의 초당적인 합의가 어느 정도까지 회복됐다. 그러나 그런 행복한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현재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은 미국의 자유로운 운신을 구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다원적 협약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핵실험·화학무기 금지와 지구온난화 방지에 관한 협약을 반대했으며 유엔을 공공연히 멸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공화당 정책의 중추를 이루던, ‘규칙에 기초한 자유무역 체제’를 관장하기 위해 창설된 세계무역기구(WTO)
에 대해서조차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이런 태도 역시 클린턴이 유발한 적대감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新고립주의’의 지도자 대다수가 남부출신의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들이다. 그들은 클린턴이 대통령으로서 행한 거의 모든 조치를 의심해 왔고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을 둘러싸고 그를 탄핵하기 위한 싸움을 이끌었다. 클린턴은 당시에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98년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클린턴은 매우 허약해졌으며 그의 정적들은 그를 무너뜨릴 또다른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모든 문제를 공화당 탓으로 돌리는 분석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소말리아 작전은 미국이 계획했고, 미국이 주도했으며, 미국이 실패한 모험이었지만 그것을 기화로 유엔을 악마시한 것은 바로 클린턴 행정부였다. 그리고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유엔 사무총장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그를 쫓아낸 것 역시 클린턴 행정부였다. 아울러 법에 근거한 지배의 미덕을 세계에 설파한 뒤 자국 대사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수단의 의약품 공장에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클린턴 행정부였다. 또 클린턴 행정부는 세계 곳곳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면서도 동시에 국방예산을 삭감해 왔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때로는 국제 규범을 무시하는 듯 보인다면 그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워싱턴만 벗어나면 미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고립적이지 않다. 미국 인구의 거의 10%에 달하는 2천5백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해외에서 출생했다. 외국 회사에서 일하고 수출상품 제조에 종사하는 미국인들도 과거보다 더 많다. 또 해외 여행을 하는 미국인들은 지난 10년 동안 25%나 증가했다. ‘마음의 외교’로 불리는 스포츠·문화·연예오락 부문에서 미국은 과거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 여타 국가들과 잘 융화돼 있다. 최근 ‘베터 월드 캠페인’(Better World Campaign)
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6%는 미국이 냉전 시절과 같은 수준이나 한층 더 강도 높게 세계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미국인들은 언제든지 핵병기 보유 목적을 포함해 세계 무대에서의 자국의 역할과 책임에 관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워싱턴 정가의 지도력이다. 그러나 지난주에는 그런 지도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With bureau reports

Michael Elliott 국제판 편집장
Michael Hirsh, John Barry 기자

뉴스위크 한국판(http://nwk.joongang.co.kr) 제 401호 199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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