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새 패러다임의 대북정책 흐름이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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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통일부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강한 안보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북이 대화를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역시 1일자 신년 공동사설에서 남북 긴장완화와 대화를 강조했다. 지난해는 어느 때보다 남북 간 긴장이 높았던 한 해였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은 곧 전쟁이라도 할 것 같이 서로 험악한 말을 쏟아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남북이 동시에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극적인 반전(反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남북은 여전히 대북·대남 강경자세 전환에 적극적이지 않다.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은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대남 군사대결 태세를 늦추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정부 주요 당국자들도 천안함·연평도 사건 사과 등 북한이 대화를 위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결국 남북 모두가 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서로에 대한 불신(不信)과 경계(警戒)의 벽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올해는 남북 모두 정책 전환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을 전망이다. 우선 곧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역시 6자회담 재개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고, 일본도 최근 북·일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일단 6자회담이 재개되면 ‘2012년 강성대국 달성’을 공표한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해 외교적·경제적 고립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의 남북대화 강조도 이 같은 정세 변화에 대비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대북 강경자세를 고수(固守)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내년 서울에서 핵안보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정부로선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진전시킬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우리의 대북 정책은 최근 10여 년 사이 급격히 변해왔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대북정책은 화해·협력의 진전만을 강조하는 유화책 일변도였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자의반 타의반(自意半 他意半) 강경 일변도였다. 그러나 유화책이든 강경책이든 일방적 정책만으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어렵다는 의견이 갈수록 늘고 있다. ‘강한 안보’와 ‘평화 정착 노력’을 함께 강조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여건 변화에 선제적(先制的)으로 대응하고 나선 것으로 보아야 한다. 10여 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의 대북정책이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사고의 틀)으로 전환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는 새 패러다임의 대북 정책이 확고히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한 안보를 토대로 남북 간 화해협력을 진전시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화해협력을 진전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군사부문에서도 대화를 통해 긴장을 낮추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강한 안보와 긴장 완화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남북 간 화해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대북 정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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