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총선서 살아남기 … 국회의원 옥죄는 ‘잔인한 송년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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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양천→강남→양천→마포→양천.

 한나라당 김용태(양천을, 초선·42·사진) 의원이 28일 송년회 때문에 오간 동선(動線)이다. 요즘 그는 점심 때 3~4곳, 저녁 때 6~7곳의 송년 모임에 참석한다. 하나하나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표가 걸려있는 일정들이어서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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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의원은 “통상 지역구 송년회 6~7개를 돈 뒤에 소액후원금 때문에 고교·대학 동창, 각종 지인들의 송년회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청목회 파문’ 이후 올해 후원금 사정이 빡빡해져 3억원이 한도인 후원금 계좌에 1억원도 안 들어왔다고 한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를 챙겨야 하면서도 동시에 정치 후원금 모금을 위해 직접 뛰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셈이다. 그만큼 참석할 모임이 많아졌다. 술을 제법 하는 김 의원이지만 송년회 모임에 가면 한 곳에서 최소 ‘소주 폭탄주’를 서너 잔 마셔야 해 한의사를 하는 친구가 지어 준 공진단과 간 해독제는 필수 상비약이 돼버렸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2010년 송년은 꽤 고되다.

 “12월 들어 송년회를 지금까지 130곳은 간 것 같다”(한나라당 고승덕 의원), “송년회를 하루 저녁에 최소 5곳은 참석한다. 지방선거 때 돌아선 민심을 확인해 도저히 몸을 가만 놔둘 수가 없다”(한나라당 정태근 의원).

 2012년 총선이 1년 남짓 남은 데다 올 6·2 지방선거에서 민심의 무서움을 경험해 몸으로 때워야 할 일이 많아졌다. 수도권 의원들은 더욱 그렇다. 게다가 옥신각신 진을 다 빼다가 연말께 통과되던 새해 예산안이 올해는 ‘너무 일찍’(12월 8일) 통과되는 바람에 국회 핑계를 대기도 어렵게 됐다.

 당 대변인을 겸하고 있는 한나라당 안형환(금천, 초선) 의원은 “요즘 아예 ‘밤무대 가수’ ”라고 말했다. 그는 28일 안상수 대표와 강원도 화천의 군 부대를 다녀오자마자 지역구에서 열리는 송년회로 직행했다. 당초 호남향우회·장애인협회·자연보호협의회 세 군데를 돌 계획이었으나 한 택시회사 송년회까지 ‘번개’로 추가됐다. 총 4곳에서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를 열창했다. 지역구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한나라당 강석호(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의원은 “육류 소비 촉진을 위해 점심이든, 저녁이든 매일 한 번씩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장외투쟁을 한 민주당 의원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신학용(인천 계양갑, 재선)의원은 28일 하루에만 인천과 서울을 세 번 왕복했다. 신 의원은 “올해는 수원·원주 등 전국에서 장외투쟁을 하다 보니 더 바쁜 것 같다” 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정치학)교수는 “스킨십도 좋지만 의원들이 몸으로 때우는 것보다 올해 지역구를 위해 어떤 의정활동을 했는지 등 정책적 측면에서 대화를 나누는 자리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정치학)도 “미국에선 의원들이 타운홀 미팅 등 주민들과 접촉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간담회를 한다” 고 말했다.

백일현·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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