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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토크] 한해 65만개를 만드는 시계 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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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는 어떤 시계인가. 벤츠를 빼고 자동차를 얘기할 수 없듯 롤렉스는 시계에서 그런 존재다. 이 시계를 찬 사람이 점점 늘어나면서 대중적인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게중에는 짝퉁도 꽤 있을 것이다. 본래 인기 브랜드일수록 짝퉁은 많은 법이니까.

롤렉스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표현은 무엇일까. 시계 명가, 이 말이 딱 맞을 듯 싶다. 끝없는 탐구 정신으로 시계의 지평을 쉬지 않고 개척해 왔다. 파일럿과 심해 다이버, 탐험가를 위한 신제품 개발에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롤렉스는 1905년 독일 출신의 한스 빌스도르프(1881~1962)가 세웠다. 5년 뒤 손목시계 역사상 최초로 공식적인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았다. 국제 공인기관(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기관인 COSC)의 검정을 통과한 시계라는 뜻이다. 손목시계가 나오기 전 유럽에선 회중시계가 유행이었다. 무브먼트를 작게 만들 기술이 없어 양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꺼내보는 회중시계가 먼저 탄생했던 것이다. 빌스도르프는 어떻게 하면 무브먼트를 작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손목에 차는 시계만 만든다면 대박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스위스 기술자들과 끈질기게 머리를 맞댄 결과 손목시계용 무브먼트를 만들어내고 마침내 '합격증'을 받은 것이다.

전 세계 시계회사 중 크로노미터 인증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롤렉스다. 그만큼 뛰어난 기술을 가졌다는 얘기다. 시계 기술은 무브먼트 제조 기술과 거의 같은 말이다. 이 회사는 무브먼트에 관한 한 일관된 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모든 무브먼트와 부품을 자체 생산한다. 특이한 것은 다른 회사에는 팔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계의 핵심부품인 무브먼트를 잘 만드는 회사는 그럴 능력이 없는 회사에 무브먼트를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롤렉스는 자사 무브먼트를 자신들만 사용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롤렉스는 현재 1년 생산량을 65만개로 제한하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도 관리하고 무결점 무브먼트를 만들기 위해서다. 다른 회사에 팔 무브먼트를 만들 여유가 없는 셈이다. 고객에 대한 AS기간은 자그마치 30년이다. 그만큼 품질에 자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롤렉스의 역사는 시계기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6년 세계 최초로 방수 시계,Oyster를 내놨다. 세상이 떠들석했다. 그 전까지 시계와 물은 상극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은 물론 먼지도 일절 허용하지 않는 밀폐 시계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금속을 통째로 깎아 케이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태엽을 감고 시간을 조정하는 시계의 용두(크라운) 부분을 철저히 밀폐했다. 잠수함 해치(뚜껑)처럼 나사를 2중, 3중으로 잠궜던 것이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1953년엔 스쿠버다이버용 시계를 처음으로 출시했다. 갻서브마리너갽란 이름의 시계는 수심 100m까지 방수가 됐다. 이런 기술이 축적돼 지금은 3900m까지 끄떡없는 시계를 만들고 있다. '씨 드웰러 딥씨'라는 모델인데 롤렉스의 특허인 링록 시스템이 적용됐다. 심해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케이스는 반구형 글라스로 돼 있고 뒷면은 티타늄 소재다. 요트선수 용으로 만든 갻요트 마스터갽는 독특한 출발 방식의 요트 경기에 맞춘 갻카운트다운 메모리 기능갽으로 첫 특허를 따내기도 했다.

1931년엔 태엽이 절로 감기는 시계를 처음 선보였다. 시계 안에 영구 회전자(perpetual rotor)를 넣어 손목이 움직이면 태엽이 자동으로 감기도록 했다. 그 전까진 크라운을 꺼내 태엽을 일일이 감아줘야 했다.롤렉스가 이 기술을 선보인 이후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계는 '오토매틱'이라 불리는 이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45년엔 날짜가 자동으로 맞춰지는 갻데이트저스트(Datejust)갽 시계를 만들었다. 56년엔 날짜와 요일이 표시되는 갻데이-데이트갽 모델을 개발했다. 둘 다 모두 최초다. 그런데 초기엔 좁은 시계 내부에 큰 글씨의 날짜판을 넣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시계 유리 표면에 돋보기를 붙이는 것이었다. 작은 숫자를 크게 보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의 롤렉스의 심볼처럼 변했다.

같은 해인 56년 롤렉스는 세계 최초로 자장을 견디는 '밀가우스'를 출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름은 프랑스어로 1000을 뜻하는 밀(mille)과 자기장 단위인 가우스(gauss)를 조합해 지었다. 이름 그대로 1000가우스의 자기장에도 견딜 수 있는 시계였다. 시계의 가장 큰 적은 자석이다. 정교하게 움직이는 미세한 부품에 자기장은 치명적이다. 밀가우스는 자기장에 매일같이 노출되는 과학자들이 정확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제작된 시계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커다란 성과였다. 자기장이 100가우스만 돼도 기존 시계는 오작동을 유발하곤 했다. 따라서 밀가우스가 나온 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도 마음 놓고 시계를 차고 일할 수 있었다. 2007년엔 진화된 밀가우스를 선보였다. 깔끔한 디자인과 기능성을 높인 '오이스터 퍼페츄얼 밀가우스'다. 3131 무브먼트와 영구 회전자, 번개 모양의 오렌지색 초침, 야광 인덱스를 갖춘 시계다.

창업자 빌스도르프는 마케팅 감각도 뛰어났다. 물론 시계제조 실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27년 런던의 여성 속기사 메르세데스 글릿즈가 영불해협을 헤엄쳐 횡단한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방수시계인 오이스터를 협찬하는 것이었다. 글릿즈는 15시간15분만에 횡단에 성공했고, 그가 찬 롤렉스 시계는 아무 이상 없이 가고 있었다. 롤렉스는 이 이벤트로 오이스터의 존재와 뛰어난 성능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53년 힐러리경과 존 헌트경의 등반대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을 때도 오이스터는 함께했다. 혹한과 갖은 충격에도 불구하고 등반대원 13명의 팔목에 걸린 롤렉스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롤렉스는 이걸 계기로 탐험가들을 위한 프로페셔널 모델 갻익스플로러갽를 출시했다.

롤렉스는 심해에서도 빛을 발했다. 1960년 스위스 출신의 해양학자이자 엔지니어인 자크 피카르는 미 해군 잠수정을 타고 '마리아나 해구' 탐사에 나섰다. 수심 1만916m로 지구상에서 가장 깊다는 곳이다. 이때 롤렉스는 잠수정 외벽에 실험용 시계인 갻Deep Sea Special'을 부착했다. 이 특수시계는 탐사가 끝날 때까지 ㎠당 1t이 넘는 엄청난 수압을 견뎌내며 임무를 수행했다.

세계적인 명품이 된 지금도 롤렉스는 마케팅에 신경을 쏟는다.테스티모니(testimonee)라는 홍보 대사를 운영하는 것이 한 예다. 이들은 롤렉스 광고 모델로 등장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알리는 문화스포츠계의 셀레브리티들이다. 현재 30명이 넘는다.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플라시도 도밍고, 정상급 소프라노 세실리아 바르톨리를 비롯해 로저 페더러(테니스)오초아소렌스탐구센(이상 골퍼)자라 필립스(승마) 등이다. 최근 광고에선 2007 미스 유니버스 1위인 리요 모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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