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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일본 넘어 종합 2위, 쾌속세대 다시 달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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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호 14면

여자쇼트트랙대표 양신영(오른쪽)이 지난 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0~2011 여자쇼트트랙월드컵 1000m 결승에서 중국 선수를 제치고 선두로 치고 나가고 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의 조해리가 우승했고 양신영은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상하이 신화사통신=연합뉴스]

한국 빙상이 다시 뛴다.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낸 겨울 소년·소녀들이 이제는 2011 아스타나-알마티(카자흐스탄) 겨울아시안게임(2011년 1월 30일 ~ 2월 6일)을 향해 달린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이후 태릉선수촌은 겨울 종목 선수들의 열기로 뜨겁다. 4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에 밀려 3위를 기록한 한국은 이번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일본을 잡고 종합 2위로 뛰어오르겠다는 각오다. 그 최전방에는 ‘메달밭’ 빙상 선수들이 있다.

담합 못하게 선발방식 바꾼 쇼트트랙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렸던 쇼트트랙 대표팀은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승부조작 파문’에 시달렸다. 지난해 올림픽 대표선발전 당시 선수 간 담합이 있었다는 내용을 두고 이정수(단국대)·곽윤기(연세대)의 진술이 엇갈렸다. ‘진흙탕 싸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한 공방이 오갔고, 결국 두 선수 모두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당시 빙상연맹 집행부 임원들은 사태에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를 했다. 내홍을 겪은 쇼트트랙은 대표선발전 방식부터 확 바꿨다. 1차 선발전에서는 기존 쇼트트랙 방식대로 남녀 각각 24명을 선발한 뒤, 2차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처럼 몸싸움 없이 달려 시간 기록으로 순위를 매기는 ‘타임레이스’를 진행, 남녀 4명씩을 최종 국가대표로 뽑았다. 지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국가대표 자격을 받은 이호석(고양시청)·박승희(광문고)까지 총 10명의 국가대표가 올 시즌 첫 대회인 2010~2011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을 시작으로 시즌을 열었다.

모태범ㆍ이상화ㆍ이승훈(왼쪽부터) 등 겨울올림픽 금메달 삼총사가 21일 태릉빙상장에서 열린 종합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이호형 기자

초반 결과는 성공적이다. 쇼트트랙대표팀은 12일 중국 상하이에서 끝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에서 8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월드컵에 걸려 있는 금메달 개수는 남녀 5개씩 모두 10개. 한국은 남자대표팀의 경우 전 종목 금메달을 싹쓸이했고 여자대표팀도 5개 중 3개를 독식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남자대표팀에서는 취약 종목으로 꼽혔던 단거리 500m에서 성시백(연세대)이 금메달을 획득했고, 노진규(경기고)가 1000m, 1500m 2차 레이스, 5000m 계주에서 3관왕에 올랐다. 또 1500m에서는 김철민(부흥고)이 금메달을 따내면서 한국 쇼트트랙의 힘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여자대표팀에서도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출전했던 조해리(고양시청)가 1000m와 1500m 2차 레이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양신영(한국체대)이 1500m 1차 레이스에서 금메달을 따내 총 3개의 금메달을 수확하며 중국세에 밀렸던 2010 밴쿠버올림픽의 굴욕을 씻어냈다.

이호석, 성시백

화제를 모으는 ‘새 얼굴’도 나왔다. ‘남매 금메달리스트’가 된 김철민과 김담민(부림중)이다. 남매는 일주일 간격으로 차례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담민은 5일 중국 창춘에서 열린 3차 월드컵 여자 3000m 계주에서 우승을 했고, 김철민은 4차 월드컵에서 당당하게 금메달을 따냈다. 쇼트트랙에서 남매가 동반 금메달을 획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팀에서 남매를 지도한 한 코치는 “오빠는 지구력이 좋고 동생은 순발력이 탁월하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어린 나이에도 긴장감 없이 담담하게 레이스를 펼치는 게 가장 큰 강점”이라며 기대를 했다.
 
혹독한 여름 지낸 스피드 3총사
2월을 뜨겁게 달궜던 ‘빙속 3인방’ 모태범·이승훈·이상화(이상 한국체육대)는 누구보다 혹독한 여름을 보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에게 8월은 혹독한 시기. 그때 땀 흘리지 않으면 겨울의 영광은 기대하기 힘들다. 스피드 대표팀 윤의중 감독은 “겨울 시즌 성적은 여름 훈련에 달렸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우리 선수들은 여름 종목 선수들보다 훨씬 더 힘들게 훈련한다”며 “새벽·오후·저녁 이렇게 하루 세 차례 훈련을 했다. 훈련 강도도 최고조였다”고 귀띔했다. 모태범은 “여름 훈련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도로 사이클 80㎞였다. 아침에 다 함께 차를 타고 포천 베어스타운으로 가서 3~4시간 동안 전속으로 도로를 왕복한다. 한 차례 사이클 훈련을 하면 온 몸의 힘이 쭉 빠졌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승훈은 “여름엔 체력 훈련도 힘들지만 빙상장도 덥다. 겨울에 그렇게 춥던 빙상장이 후끈했다. 땀이 뚝뚝 빙판 위로 떨어졌다”고 거들었다. 이상화는 “차라리 스케이트 훈련을 하는 지금이 훨씬 쉽다. 체력 훈련이 너무 고되어 하루빨리 전지훈련을 떠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고 회상했다.

한여름의 땀방울은 그들에게 또 한번의 희망을 가져다 줬다. 이상화는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 그는 “올림픽 후에는 금메달리스트라는 부담감이 있었고, 그래서 월드컵 1, 2차 대회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훈련의 성과가 나타나 4, 5차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했다. 11월에 자신의 왼쪽 스케이트날에 오른쪽 아킬레스건을 찢기면서 한동안 재활기를 보낸 모태범은 “여름에 얻은 힘으로 시즌 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승훈은 여름 내내 쇼트트랙 훈련에 땀을 흘렸다. 쇼트트랙이 자신의 선전 비결이라고 믿는 그는 한국체육대 빙상장에서 외롭게 훈련한 결과 질주 폼이 다소 바뀌었다. 자세가 더 낮아져 안정적이다. 이승훈은 “올림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앞으로 10년은 더 스케이트를 타야 하니 더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도 이들에게는 수많은 훈련일 중 하루였다. 모태범은 태릉선수촌에서 여전히 훈련에 매진했고, 이승훈은 아시아선수권대회(27~29일) 참가를 위해 24일 중국 하얼빈으로 출국했다. 이상화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만 살짝 맛봤다. 그는 “3주 연속 경기 출전을 했으니 크리스마스 전후 3일 휴가에는 조금 쉬어 줘야 한다.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났지만, 집에 일찍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카자흐스탄 아시안게임 전까지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규혁·이강석도 목표는 우승
밴쿠버에서 다섯 번째 올림픽 무대에 도전했던 이규혁(서울시청)은 대회 직전까지 쾌조의 컨디션을 보였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5차 대회에서 500m 1, 2차 우승을 했고, 1000m에서는 1분7초07로 한국 타이기록을 세웠다. 이어 열린 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는 통산 세 번째 남자부 우승도 차지했다. 자타공인 세계 최강자였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그의 기세는 무섭기만 하다. 22일 끝난 제65회 전국남녀 종합빙상선수권대회에서 그는 500m, 1000m 1, 2차 대회를 모두 석권, 대회 10연패를 달성했다.

그는 “나는 아시안게임보다도 세계 스프린트선수권대회가 욕심난다. 이 대회를 네 번 우승한 이가 역대 3명 정도뿐이다. 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나오는 대회니까 내가 네 번째 우승을 해 네 번째 선수가 되고 싶다. 아시안게임은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후배들이 잘해 줄 것으로 믿는다”며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 정말 좋다. 이기고 지는 것은 나한테 큰 의미가 없다. 즐기며 타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올림픽에서 함께 아픔을 맛봤던 이강석(의정부시청)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리며 태릉에서 맹훈련 중이다. 그는 “올림픽 후 한동안 멍했지만,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살아있다는 걸 스포츠 팬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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