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Global] ‘프랑스 국민가수’ 파트리샤 카스, 5년 만에 내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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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적인 중저음과 미모. 록·재즈·블루스의 경계를 넘나들며 에디트 피아프 이후 프랑스의 샹송 국민가수로 인기를 얻어 온 파트리샤 카스(44). 1987년 ‘마드모아젤 샹트 르 블루스(Mademoiselle Chante Le Blues)’ 앨범으로 데뷔한 이래 전 세계에서 1600만 장의 앨범 발매 기록을 올린 그녀가 5년 만에 방한했다. 1998년 프랑스 여론조사에서 대중가수로서는 이례적으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 5위에 뽑히기도 했던 그녀다. 지난 11월 30일 오후, 경쾌하게 커트친 금발머리의 카스가 짙은 회색 릭오엔스 가죽 재킷에 회색 데님팬츠 그리고 메탈 부츠 차림으로 j 와 만났다. 독일과 인접한 프랑스 북부 태생인 그녀는 독일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독일에서도 활동이 활발하다. 최근에는 러시아에서 화장품·향수 체인인 ‘레투알(L’Etoile)’ 전속 광고모델도 하고 있다. 사진 촬영에 앞서 건네받은 화장품으로 거울도 보지 않은 채 능숙하게 아이라인을 그리던 그녀에게 화장의 컨셉트가 뭐냐고 물었다. 프랑스 여인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프랑스적이며 섹시한(French and sexy) ….”

글=이네스 조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한국에서의 예전 공연을 기억하는가.

 “1994년 첫 공연을 잘 기억하고 있다. 아시아에서의 첫 투어였는데 ‘케네디 로즈’라는 내 곡이 한국 내 광고에 쓰였었고, 한국 팬들이 (나를) 매우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도착해서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조용한 기자회견밖에 없어서 아주 수줍어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무대에 막상 오르자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열광하는 건 내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무대 위 나의 모든 움직임이 열광의 요소가 되었다. 말하자면 히프를 약간만 움직여도 반향이 대단했다. 관객이 25세에서 60세 사이의 다양한 층이라는 건 알았지만, 마치 모두가 열광하는 10대 팬 같아서 내가 마치 ‘걸밴드’가 된 느낌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카스는 이후 2002, 2005년에도 공식 내한 공연을 했다.

●세계 여행에 항상 동반하는 파트너, ‘테킬라’를 데려왔는지.

 “작은 강아지인데 아무 데도 데리고 갈 수 없어서 큰 문젯거리다. 지금 호텔 방에 두고 나왔다. 호텔 측에 많은 얘기를 해서 간신히 데리고 왔다. 내 아이 같은 존재인데 (한국의) 식당이나 바엔 못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건, 파트너를 데리고 왔는데, ‘당신은 들어오고 파트너는 밖에서 기다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특별한 식당 같은 곳은 이해가 가지만, 일반적으로 문제시되는 게 이상할 뿐이다. 한국에는 먹을 것만 조금 가져왔다. 하루 한 번 밥 먹고 오줌을 싼다. 현재 (테킬라는) 다이어트 중이다. 이제 8살 반인데,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떤 나이대가 되면 (신체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건 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1999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이란 한국 공연에도 잠깐 섰었는데.

 “잭슨과의 공연은 아주 큰 장소에서 열린 대형 행사였지만, 다른 출연자들이 많아서 내겐 짧은 공연이었다. ‘와우’ 할 정도로 굉장했다면 마이클 잭슨과 같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침 한국에서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당연히 가려진 앞쪽 자리를 차지했고 나머지 가수들은 뒷자리에 앉았었다. 이륙해서 30분 정도 지나고 보니, ‘인사하고 알고 지내면 어때서’라는 생각에 (그를 만나러) 앞자리로 가 봤는데, 딱 30초밖에 만날 수 없었다. ‘헬로’라고 인사하면서 다가가니까 그가 뒷걸음을 쳤다. 미소를 지으면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인사말은 건넸지만 사실 그게 다였다.”

●젊은 세대들은 당신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2005년 서울에서 공연했던 ‘남성(Sexe Fort)’은 ‘록’에 가까운 스타일이었다. 파리의 올림피아 홀에서 6000명 관객 앞에서 하는 것과는 다르듯이 쇼에 따라서 관객층에 차이가 난다. 아마도 그전엔 더 젊은 층이었을 것이고,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옛날처럼 라디오에서 노래를 듣는 세상도 아니고, 불어로 된 음악이기에 젊은 사람들에게 호응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그건 다른 프랑스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아직도 ‘마드모아젤 샹트…” 같은 앨범을 좋아하긴 하지만 역시 언어의 장벽은 있는 것 같다. 또 젊은 세대들은 최근 미국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음반 발매 방식을 바꾼 것인가.

 “‘카바레’ 앨범은 2008년 인터넷을 통해 출시했다. 새로운 방식에 사람들이 놀랐던 것 같았다. 현 세대의 변화를 포용하는 게 늦는 프랑스에서는 굉장한 뉴스였다. 중요한 건 ‘믹싱’을 잘 하는 건데, 불어가 그 장벽의 원인이 된다고 본다. 내가 프랑스 노래를 영어로 부른다면, 당연히 나보다 월등히 더 잘 부를 수 있는 가수들이 있지 않겠나. 물론 한두 곡 영어로 된 노래들이 있지만, 나만이 가진 특별한 점, 강점이 있다면 역시 프랑스적인 정서와 감성을 담는 ‘프렌치 터치’라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시작해서 미국으로 진출했다. 한국에서의 활동 계획이 있나.

 “프랑스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지만 어머니가 독일인이고, 나는 독일어도 구사하기 때문에 독일에서도 활동한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께서 자랑스러워하실 일이다. 가수가 25세라면 새로운 시작을 개척하기 위해 일 년 정도 시간을 내는 것이 큰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난 40세가 넘었기에 그런 기회를 굳이 찾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 시장에서 프랑스와 그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알리고 유명해지려면 그곳에 정착해야 한다. 프랑스나 독일 등지처럼 그동안 공을 들여온 오래된 시장에선 지속적으로 내가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은 팬들이 많이 계시긴 하지만 그러기엔 좀 먼 것 같다.”

●비욘세, 마돈나, 티나 터너’ 같은 세계적인 ‘디바’들의 대열에 끼는데 다른 여가수와 공동 작업을 해볼 계획은 있는지.

 “동성애자들이 디바들의 음악을 좋아하듯, 내 음악도 그들이 선호한다. 하지만 난 흔히 말하는 차갑고 거리가 먼 이미지를 가진 ‘디바’가 아니다. 비욘세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의 음악을 사랑한다. DVD에서 보이는 그녀는 춤도 잘 추고 미국적인 음색을 가졌을 뿐 아니라 카리스마도 대단하다. 나는 마돈나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내놓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난 20여 년의 커리어를 가졌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노래를 하지만, 일렉트로닉 음악도 흥미롭게 여긴다. 생각만으로야 신나지만, 스스로 ‘관두자, 나중에 앨범 내면 되지 뭐’라며 도전을 포기하기도 한다. 아이디어가 있다면 새로운 장르의 프로듀서와 작업을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십(Gossip)’이라는 가수와 노래를 한번 해 보는 것이 현재 꿈이다. ‘가십’은 ‘에디트 피아프’ 같은 목소리를 지닌 신인이며 록에 가까운 음악을 한다. 그가 ‘카바레’ 투어에선 나의 옛 히트 곡들을 리메이크해서 보여줬다. 훌륭한 쇼였는데 아시아에 가져오지 못해서 유감이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카바레’에는 처음으로 시도한 자작곡을 선보였다. 앞으로 작곡가로서 활동할 계획이 있나.

 “작곡이라는 게 어렵다고 느꼈다. 어떤 시점에 다다르기 위해 더 많은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가끔 생각한다. 관객이 듣고 싶어하는 것과 가수의 목소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 그리고 가수가 하고픈 것,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2009년 유로비전 콘테스트에 프랑스 대표로 참여했다. 이미 유명한 프로가수가 이런 대회에 나가는 게 이상했을 것 같다.

 “물론이다. 대회에 나가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왜’라고 물었다. 그러고 나서 도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용기가 생기면서 ‘안 나갈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내 나라를 대표해서 내 곡인 동시에 프랑스인의 곡, 그것도 템포가 느린 곡을 초대형 무대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부르면서, 내 평생 그렇게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만약 그걸 해야 한다면(Et Si’il Fallait le Faire)’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곡이었다. 아주 프랑스적인 노래이며, 그런 에너지를 가진 파워풀한 곡이다. 대상을 타지 못해서 슬펐고 실망도 했지만 내 참여는 많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유로비전’은 프랑스 내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이미지였는데, 나의 참여로 인해 수많은 프랑스인이 방청했고, 또 모두 나의 선택을 존중하게 되었다.”

●아직 독신인데.

 “생전에 어머니는 아주 보수적이셔서, 빨리 남편을 구해 결혼을 하라고 재촉을 많이 하셨었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내가 가수로 성공하는 것이 어머니의 꿈이었다고 본다. 깨달은 게 있다면, 자신의 최고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감도 키워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긴 하지만 난 아직도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걸 안다. 남들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잘못 길을 들어설 수 있다. 그리고 물론 한계가 있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촛불이 켜진 로맨틱한 저녁 초대를 받고 싶지만 그것만을 위해 산다면 오히려 사람들한테 소외받는 삶을 살 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로맨틱한 만찬을 포기해야 하나.

 “아니다. 문제는 요즘 여자들이 남자 세계를 주도하면서 너무 독립적이 됐다는 것이다. 남자한테 ‘내가 저녁을 사주겠다’는 식으로 나와버리면 우리 여자들은 뭔가를 잃게 되는 처지가 된다.”

●당신도 그런 초대를 자주 받는가.

 “나도 촛불이 켜진 로맨틱한 디너에 초대받는 게 좋다. 여자란 촛불 아래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그런 기회가) 자주 있진 않다. 남자들은 내게 말 거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먼저 말을 시켜야 할 때가 있다. 독립성이 강한 여자들을 보고 남자들은 주눅들어 한다. 독립적인 건 좋지만 남자관계에 있어서 너무 강하게 나오면 남자들은 약해지게 돼 있다. 남자는 어디까지나 남자이고 싶어하니까.”

파트리샤 카스의 대표곡

● 아가씨가 부르는 블루스

  (Mademoiselle chante le blues) 1987

● 내 남자는 내 것(Mon mec a moi) 1988

● 부자들을 보세요(Regarde les riches) 1990

● 케네디 로즈(Kennedy Rose) 1990

● 아무것도 못 가진 사람들(Ceux qui n’ont rien) 1993

● 그녀를 알고파(Je voudrais la connaitre) 1997

● 만약 그걸 해야 한다면(Et s‘il fallait le fair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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