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지도자 크기가 나라 크기다’] ‘갑과 을’ 상생이 가장 필요한 곳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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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국회 의사당. [뉴시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진이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2010 올해의 사진’ 중 11월의 사진에 선정되었답니다. ‘G20 서울 정상회의’나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찍힌 멋진 사진 중에 하나가 뽑혔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11월은 나은 편입니다. ‘12월의 사진’에는 대한민국 국회의 몸싸움(솔직히 그냥 패싸움이었지요) 장면이 뽑혔으니까요.

 연일 언론 톱뉴스에 무장한 군인들이 나오고, 온갖 신무기들이 불을 뿜는 장면이 보도되고, 방독면을 쓴 할머니 사진이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와중에도 대한민국은 곳곳에서 싸움판입니다. 여야도 싸우고, 서울시와 의회도 싸우고, 종교끼리도 싸우고, 종교 안에서도 싸우고, 기업들도 싸웁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과 북·중이 싸우고, 기회다 싶어 러시아까지 끼어드는 판국에 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연하장에서 ‘최상의 안보는 단합된 국민의 힘’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전적으로 옳은 말입니다. 세상에 제일 한심하고 무서운 것이 ‘적전분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정말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를 단결시킬 ‘지도자’가 있을까요? 단결은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존경받는 지도자’ ‘권위 있는 지도자’만이 국민을 단결시킬 수 있습니다. 존경과 권위는 ‘통찰과 판단’ ‘용기와 결단’ ‘설득과 포용’ ‘희생과 헌신’ 속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자질을 두루 갖춘 지도자가 있습니까? 정치·종교·언론·사법·기업·학계 어디에 그런 지도자가 있습니까?

 청와대는 걸핏하면 정치를 폄하하고 ‘여의도’를 경멸합니다. 대통령은 ‘공정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제가 보기에 ‘갑’과 ‘을’의 상생이 가장 필요한 곳은 청와대와 한나라당 관계인 것 같습니다. 관료들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오만에 빠져 남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습니다. 여당 대표는 툭하면 ‘구설’에 오르고, 야당 지도자들은 여의도를 떠났습니다.

 기업인들은 돈 되는 일은 뭐든 한다는 기업가 정신(?)에 투철한 듯싶고, 사법부는 개인적 정치 신념을 공정의 잣대로 제어하지 못합니다. 보수는 진보를 ‘박멸’하자고 하고, 진보는 보수를 ‘타도’하자고 합니다. 지식인들은 지나친 당파성과 진영 사고에 파묻혀 빈약한 논리로 궤변을 늘어놓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일부 종교 지도자도 평화와 화해를 가르치기는커녕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증오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독선이 신앙을 만나면 그처럼 무섭습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국민의 단결을 호소해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전쟁에 대한 태도도 다를 수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것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생각이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 모자란 것을 한탄해야 합니다.

 정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상의 차이와 이해의 충돌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정치가 해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못하면 그것을 누가 하겠습니까? 대통령은 정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성가시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 자신의 생명줄인 자일을 스스로 자르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정치와 대결하면 국민은 반드시 대통령과 대결합니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여의도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정치가 지력을 다한 것 같으니 이젠 객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개헌’의 전도사로 나섰습니다. 이재오 장관께 두 가지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청와대나 정부가 여의도를 너무 폄하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여의도에는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인 ‘헌법기관’이 제일 많이 있는 곳이니까요.

 개헌과 관련해서는 오늘은 하나만 제언드리고 싶습니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연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프랑스나 브라질이 그렇게 하고 있지요. 우리는 알다시피 1987년 노태우 후보가 겨우 36.6%로 대통령이 된 이래로 다섯 명의 대통령 모두가 50% 지지를 넘지 못한 채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치명적 약점이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정통성이 강해야 국민의 단결을 이끌 수 있습니다. 국민들도 최종적으로 지지한 대통령에 대해서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성원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러면 대한민국이 지금보다는 증오와 대립이 조금은 더 줄어들지 않을까요?

정치컨설팅 ‘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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