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암투병 끝내 이긴 이 사내 그 힘은, 노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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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 늦깎이 데뷔해 앨범 400만 장을 팔고 정상에 오르자 뇌종양이 찾아왔다. 팝페라 테너인 러셀 왓슨은 그런데도 “내 삶엔 행운이 가득하다”고 한다. [소니뮤직 제공]

“뇌종양 얘기를 안 할 수 없겠습니다.” 이달 초 전화 인터뷰, 말 꺼내기 어려워하는 기자를 러셀 왓슨(44)이 가볍게 재촉했다. “괜찮아요. 계속하세요.” 시간을 2007년으로 돌렸다. ‘댓츠 라이프(That′s life)’. 왓슨이 그 해 내놨던 3집의 타이틀 곡이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렀던 노래를 왓슨이 다시 불렀다. 가사는 이렇다. ‘4월에 최고에 올랐다 5월에 추락하고 마는 것, 그게 인생.’

◆도약과 추락=왓슨은 2000년 첫 앨범으로 예상치 못한 스타덤에 올랐다. 데뷔 전, 20대 전체와 30대의 절반을 영국 맨체스터 인근의 철강 공장에서 일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오페라 아리아와 옛 팝송, 나폴리 민요 등을 부른 앨범이 히트를 쳤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도 올랐고, 2집을 합쳐 전세계적으로 400만 장을 팔았다.

 노래 가사처럼, 삶은 갑자기 곤두박질쳤다. “2003년 심한 두통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 처음 찾아갔던 의사는 ‘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니 쉬어라’고만 했어요. 도무지 낫지 않아 두 번째 의사를 찾았고, 뇌종양 진단을 받았습니다.”

 2005년부터 2년을 투병했다. 2007년 재기를 알렸던 음반이 ‘댓츠 라이프’다. “암은 정확한 순간에 찾아왔어요. 영국·미국의 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했던 그 순간,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한 그 찰나에 말이죠.”

 암을 이기고 돌아온 앨범 속 음성은 좀 더 소박하고 힘이 빠져있다. 노래 가사는 이렇게 계속된다. ‘다들 이런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나는 보고만 있지 않겠네. 6월엔 좋은 시절을 돌려놓을 테니.’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르고 난 후 뇌종양은 재발했다. 3년의 공백이 이어졌다. 전화 인터뷰에서 왓슨은 “어떤 이들은 내 인생이 엄청난 드라마라고 하죠. 음악으로 승리한 스토리라고요. 하지만 전 그저 노래가 가장 좋았고, 암이 방해하지 않을 때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노래가 좋을 뿐”=그의 말처럼, 희망에 관한 거창한 이야기는 없었다.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약속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공장에서 일하며 공장과 창고만 들락거렸지만, 노래하는 게 더 즐겁고 좋았죠. 그래서 언젠가 노래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렸을 뿐이에요.”

 데뷔 전, 철강공장에서 작은 부품을 조립했던 그는 일이 끝나면 인근 술집에 가 노래를 부르곤 했다. 비틀스를 좋아했다. “술집 주인이 추천해 우연한 기회에 음반사와 계약을 하게 됐는데, 내 목소리엔 정통 성악 발성이 어울린다고 조언하더군요.”

 그때부터 레슨을 받아 팝페라 테너로 ‘종목’을 정했다. “내 인생은 오히려 행운으로 가득 차 있어요. 예상치 않았을 때 기회가 오는 삶은 흔치 않죠.”

 두 번째 암투병을 끝내고 이달 내놓은 음반 ‘라 보체(La Voce·목소리)’에서 그는 영화 ‘대부’ ‘러브스토리’ 등 기존에 있던 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로 바꿔 불렀다. 체질적으로 가볍고 꾸밈없는 목소리에 성악 발성이 살짝 가미돼 특이한 소리가 나온다.

 그의 계획은 “언젠가 비틀스처럼 세상이 기억할 스타일을 남기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고단한 일이 생겨도 노래를 멈추지 않아온 천생 가수다운 꿈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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