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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로 대학 갔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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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모집 원서를 내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들이 많다. 그러나 이미 수시 합격을 일궈내 대학 생활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 일찌감치 ‘수능성적으로는 목표 대학에 합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들은 ‘논술’에 집중했다. 수험 생활 동안 100개가 넘는 모의논술 문제를 풀며 취약점을 파악했고, 꾸준한 연습으로 실수를 줄여나갔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면 관련 서적을 뒤져 배경지식을 쌓았고, 10여 개가 넘는 대학의 논술 예시문제를 보면서 자신의 논술 스타일에 맞는 대학을 스스로 찾아나갔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나의 글’을 쓰기 위한 단계적 노력

“인문계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제시문에 나오지 않는 ‘나의 단어’로, ‘나의 글’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서강대 수시 1차 일반전형(1단계에서 논술 62.5%, 학생부37.5% 성적으로 2~3배수 선발한 뒤 2단계에서 1단계 성적 80%와 면접 20% 점수로 최종 선발)으로 신문방송학과에 합격한 강유미(서울 영동일고 3)양은 ‘어휘력’을 강조했다. “요약문제라도 제시문에 나온 단어나 문구를 그대로 베껴 쓰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어요. 지문의 요지를 파악한 뒤 그 내용을 자신의 어휘로 풀어내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고2 때 치른 모의고사에서 언어와 수리에서 각각 2~3등급과 3~5등급을 받았던 강양은 고3에 올라와 치른 3월 모의고사에서도 성적이 오르지 않자 수시 논술에 집중하기로 했다. 서울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판단이었다. 4월 첫 모의논술을 치르면서 어휘력 부족을 실감한 그는 신문을 읽으며 주요 시사이슈 관련 단어를 정리했다. 또 경제와 노동 등 사회 관련 서적을 골라 읽으며, 중요한 어휘를 따로 정리했다. 강양이 만든 어휘 공책에는 ‘상향 평준화’와 ‘폐해’ ‘실물감각’ ‘잉여인간’ ‘촉매제’ 등 시험에 나올 법한 단어의 뜻과 활용 문장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매주 1~2차례 모의논술을 치른 뒤에는 모범답안을 참고로 잘못된 점을 꼼꼼히 분석했다. “대학 기출문제와 예시문제의 모범답안에는 ‘이 문제에서는 ~을 찾아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문제에서 요구하는 핵심 내용이 담겨 있어요. 문제를 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수한 부분을 찾아내 고쳐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틀린 문제는 2~3차례 다시 써봤다. 그는 “논술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출제 의도를 벗어나면 논리적 근거를 드는 데 한계가 있다”며 “문제 의도를 벗어난 경우 모범답안을 참고한 뒤 내 생각을 덧붙여 2~3번 다시 쓰는 연습을 하면 문제유형별 출제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이 생긴다”고 조언했다.

글 쓰기 전 개요를 작성하는 습관을 들였다. 제시문에서 주제를 파악한 뒤 ‘주제→근거→예시→확인(대안 제시)’ 식으로 순서를 정해 단계별로 들어갈 핵심 문장을 적었다. 그는 “개요 없이 2000~3000자의 글을 쓰다 보면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며 “시간 안배를 위해 핵심 문장만 간략히 적는 게 좋다”고 말했다.

수시 원서접수 2개월 전부터는 지원 가능 대학의 논술 예시문항을 풀면서 자신의 논술 스타일에 맞는 대학이 어디인지 찾았다. 취약 부분인 수리 문제를 출제하는 대학은 원서접수 대상에서 지워 나갔다. 강양은 “대학별로 출제 경향이 판이하기 때문에 출제 유형이 자신에게 맞는 대학 2~3곳을 찾아 해당 학교의 기출문제와 예시문제를 집중 학습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논술 문제는 사회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험을 2주 앞둔 시점에서는 윤리·사회문화·경제 등의 교과서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배경지식이 더 탄탄해져 자신의 논리에 힘을 실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논리적 비약’ 없애는 게 최우선 과제

백승훈군은 “수능을 대비해 평소 수학·과학 과목을 공부할 때 논술을 염두에 두고 개념 정의를 확실히 해두면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황정옥 기자]

“수리·과학논술 답안을 쓸 때 저를 포함한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나는 아니까’라는 생각으로 풀이과정을 뛰어넘는 겁니다. 답안을 작성하는 사람은 아는 내용이라도, 평가자는 답안에 논리적 비약이 있으면 좋은 점수를 주지 않죠. 무엇 하나도 놓치고 넘어가지 말고 풀이과정을 꼼꼼히 적어야 합니다.”

수시 2차 논술 100% 전형으로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에 합격한 백승훈(구리 인창고 졸)군은 “많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 한 문제를 여러 번 풀면서 정답이 도출되는 과정에서 누락한 부분이 없는가를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수시모집 논술 중심전형으로 여러 대학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수리·과학 논술문제를 풀었지만, 문제 풀이에만 급급했을 뿐 정작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분석을 하지 않았어요. ‘A→B, B→C, C→D이기 때문에 A→D이다’를 도출해야 했지만, 제 풀이과정에는 B→C라는 과정이 빠져 있었죠.” 2월 초 재수를 결심하고부터는 논술 첨삭을 받으며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한 뒤 고쳐나갔다. 수리논술은 수식만 활용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수식에 대한 개념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개념설명을 쓰다 보면 풀이과정의 흐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놓치고 넘어가는 부분을 줄여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논술은 답안 도입부에 문제를 풀면서 활용할 중요 개념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하는 게 좋아요. ‘1+1=2’라고 정해놓아야 ‘2+1은 3이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과 같은 논리죠. 평가자들에게 ‘왜 갑자기 이 내용이 나왔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백군은 “틀린 답이 나왔다고 해서 모범답안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해설을 보면 “그렇구나” 하고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왜 틀렸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정답이 나올 때까지 같은 문제를 2~3차례 풀면서 오답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며 “5~6번 풀어도 안 풀리는 문제는 모범답안을 2~3차례 베껴 쓴 뒤 이튿날 다시 풀며 풀이 방식을 내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재수를 경험한 그는 “논술 전형을 준비한다고 해도 수능 준비에 소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입시에서는 과학탐구 한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3~5등급을 받으면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있었던 대학에선 사정 대상자에도 끼지 못했다. 백군은 “올해 ‘정시로는 목표로 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뒤 하루 2~3시간씩 논술 준비에 집중하면서 수능을 전략적으로 대비했다”고 말했다. 상위권 대학 상당수가 논술 중심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2개 영역 2등급 이내’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점수가 잘 나오는 수리와 과학탐구 영역에 집중 투자했다. 백군은 이번 수능에서 다른 영역은 3~4등급의 성적을 받았지만, 수리와 과학탐구는 2등급을 받아 최저학력기준을 넘겼다.

“수학·과학을 공부할 때도 논술을 염두에 두고 개념 정의를 확실히 해두는 게 좋아요. 평소 공부하다 어려운 부분을 모아 정리해 두면 논술고사에 임박해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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