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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들고 동안거 하안거, 먹과 글과 함께한 4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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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11일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북하우스 개막식에서 휘호하는 하석 박원규씨. [한길사 제공]

중국 대학에서 서예과는 인기학과다. 입학이 확정되면 축하를 받는다. 일본에서도 서예가의 위상이 대단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붓을 내려놓는 서예가가 늘고 있다. 서도(書道)에 냉랭한 현실 탓이다.

 하석(何石) 박원규(63)씨는 서예 복원을 위해 애써온 대표적 작가다. 서예를 오늘에 되살려놓겠다는 의지가 남다르다. 스님들이 겨울과 여름에 날을 정해놓고 용맹정진하듯 그가 방학을 이용해 동안거와 하안거에 드는 까닭이다. 자신의 개인전에 당당하게 입장료를 받고, 서예 전문지 ‘까마’를 창간했다.

 하석의 서예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한길사)다. 그가 제자이자 서예평론가인 김정환(41)과 12차례에 걸쳐 나눈 대화 기록이다. ‘나는 일필휘지하지 않는다’ ‘글씨는 곧 나다’ 등 12장에 걸쳐 서예 전반과 그의 삶에 관한 속내를 풀어놨다.

 그는 ‘서예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서예란 붓으로 자신의 마음상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서예를 통해 드러내는 마음상태는 본인의 수양 여부에 따라서 큰 차이를 갖게 됩니다.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몸과 마음의 수양을 통해 일정한 경지에 이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자견심(一字見心)’이란 말이 있다. 한 글자에 마음이 보인다는 뜻이다. ‘서여기인(書如其人)’도 뒤에 익은 소리다. 글씨는 그 사람이란 얘기다. 하석의 서예론과 다 통한다. 책 출간과 함께 경기도 파주시 예술마을 헤이리 북하우스 갤러리 한길에서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리는 ‘자중천(字中天):『박원규 서예를 말하다』 출간기념 기획전’은 그의 서예 인생 40년을 돌아볼 수 있는 자리다.

 “서예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그의 한 획 한 획 살아 꿈틀거리는 글씨들이 관람객을 가슴으로 맞는다. 031-955-2094.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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