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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ICC의 ‘金부자’조사 효과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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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북한의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전쟁범죄자로 쫓기게 될 운명에 처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북한의 전쟁범죄자들을 조사하겠다고 12월 7일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제기구는 선언적인 의견 표명 정도에 그치지만 ICC는 나름대로의 집행력을 가지고 있다. 조사 결과 혐의가 확실하면 체포영장도 발부하고 구금시설도 가지고 있다. 현직 수단 대통령인 알바시르는 전쟁범죄, 반인도범죄 혐의로 2009년 3월 체포영장이 발부돼 지금까지 쫓기는 신세다. 해외여행도 마음대로 못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ICC 감옥에는 전 콩고 부통령 장 피에르, 콩고 민병대 지도자 토마스 루방가 등이 구금돼 있다. 발칸의 도살자라 불리는 전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전범으로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3월 이 감옥에서 사망했다.

 ICC가 이번에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사건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이다. 천안함 폭침은 남북 적대행위 종식을 규정한 1953년 정전협정 위반이면서 ‘북한의 기만적 살인행위(trecherous killing)’로 로마규약 8조 2항 위반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연평도 공격은 같은 8조2항의 ‘민간인, 민간시설, 자연환경에 대한 고의적이고 직접적인 공격’ 조항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김정은을 포함한 북한의 전쟁범죄자들에게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하기까지는 난관이 없지 않다. 우선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북한이 공격한 것은 확실하지만 ICC는 국가가 아니라 개인을 처벌하기 때문에 특정 개인이 천안함·연평도 공격에 직접 개입돼 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물론 김정일을 포함한 몇 사람들은 ‘지휘 책임자는 자신이 공격 지시를 직접 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을 못 막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로마규약 28조에 의해 체포 영장이 떨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 책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세 사람이다.

 먼저 김정일이다.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지휘·통솔 책임을 져야 한다. 김격식 4군단장은 연평도를 공격한 해안포 부대 현장 책임자이기 때문에 확실한 기소 대상이다. 아울러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북한의 비밀 작전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천안함 사건 관련 주요 조사 타깃이 될 것이다.

 당군사위 부위원장인 김정은의 경우에는 좀 더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기소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연평도 공격에 관여했다는 북한 내부 증언이 나오고 있고 또 앞으로 그 사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탈북할 수도 있기 때문에 김정은도 기소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들의 기소와 체포 영장 발부까지는 수년 이상이 걸린다. 이 때문에 당장 더 중요한 문제는 ICC의 조사가 북한 지도부에게 줄 심리적 충격이다. 전쟁범죄자에게는 공소 시효가 없기 때문에 김정일과 김정은을 비롯한 전쟁 책임자들은 언제든 체포될지 모른다는 걱정 속에 평생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조사는 북한 내부 주민들에게도 파급력을 크게 끼칠 것이다. ICC에서 김정일·김정은을 범죄자로 판정하게 되면 그 사실이 곧 북한 내부로 확산될 것이고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김정은을 독재자를 넘어 범죄자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독재자와 범죄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의 박정희, 싱가포르의 리콴유,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훌륭하고 존경받는 독재자는 있을 수 있으나 훌륭하고 존경받는 범죄자는 성립하지 않는다. 범죄자는 처벌받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즉 김정일과 김정은이 범죄자로 낙인 찍히게 되면 북한 주민들과 엘리트들의 반체제 흐름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 체제의 종말을 앞당길 것이다.

 ICC 조사는 김정일보다 김정은에게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김정일은 ICC 조사가 진행되는 수년 안에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수령이 돼 독재를 해보기도 전에 범죄자로서 쫓기는 인생을 살아야 할 운명이 돼버렸다.

 지난해 11, 12월 필자는 두 번에 걸쳐 북한의 반인륜범죄 예비조사를 촉구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C를 방문한 적이 있다. ICC 감옥도 참관했다. 어쩌면 몇 년 후 우리는 김정일 부자 얼굴을 그 감옥 창살 안에서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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