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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의 새 뮤지컬 '아름다운 死因'

중앙일보

입력

어느 배우보다도 브랜드 가치가 높은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장진씨가 독특한 발상의 시체 이야기를 들고 나타났다.

다장르적 성격의 하이브리드 뮤지컬을 표방한 '아름다운 사인(死因) ' . 11월 4~24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자살한 여자시신 6구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수다를 떠는 이야기다.

시신들이 검시실 침대에서 벌떡벌떡 일어나지만, 무슨 신통한 힘을 지닌 귀신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스릴러물은 더더욱 아니다.

그야말로 시체들이 수다 떠는 이야기다.

유화이(배종옥.김선경 더블캐스팅) 는 시신을 부검하는 검시관이다.

시신을 헤집기 전에 먼저 시신들과 대화를 즐긴다. 통성명을 하고 사망원인을 확인하고 때로는 유서를 읽으면서…. 일상의 어느날 유화이는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가 자살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6구의 여자시체들과 만나는 우연 속에 놓인다.

농약을 막걸리 사발로 마신 45세의 조숙자, 27층 건물 옥상에서 몸을 던진 35세 한혜선, 타고가던 벤츠를 성수대교에 받고 병원에 옮겨지다 죽은 27세 최정미, 수면제를 다량 복용했지만 정작 사인은 알약이 기도로 넘어가서 질식사한 31세 이수민, 나일론끈으로 목을 맨 53세 김귀인,
동맥을 칼로 그은 16세 정선아. 이들은 유화이와 대화하기 위해, 때로는 다른 이들의 대화에 참견하려고 얼굴을 덮은 시트를 젖히고 얼굴을 내민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죽은 자의 입을 통해 산 자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왜 죽었는지, 죽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나이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지만 세상살이 싫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만큼 모두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은 TV드라마 소재로 흔히 볼 수 있는 부부불화, 불륜, 강간 등이어서 다소 상투적이지만 장진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특유의 재치있는 대사와 기발한 상상력이 재미있는 수다로 만들어준다.

어렵게 모은 돈을 고치지도 못할 병에 쏟아붓는 남편을 위해 목숨을 끊었지만 정말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는지 궁금해 검시관에게 건강상태를 묻고, 죽은 동안에 새로 온 호출기 메시지를 들으려고 전화를 거는 시체들은 살아있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죽은 사람을 '저 세상 사람' 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서는 시체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친근한 존재로 표현하는 것이다.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었던 배종옥을 만날 수 있고 1인7역을 능청스럽게 해내는 탤런트 조민기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이 뮤지컬이 지닌 매력의 하나이다. 02-516-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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