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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보물 6점 뉴욕 ‘나들이’

미주중앙

입력

조선시대 서민예술의 극치인 분청사기(粉靑沙器)가 뉴욕에서 대대적으로 선보인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은 내년 4월 5일부터 8월까지 한국실에서 특별전 ‘리움 콜렉션에서 온 한국의 분청사기(Korean Buncheong Ceramics from the Leeum Collection)’을 연다.

서울의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대여해오는 분청사기는 분청사기철화어문호(보물 제787호), 분청사기조화박지모란문장군(제1070호), 분청사기철화모란문장군(제1387호), 분청사기상감모란문호(제1422호), 분청사기인화문장군(제1423호) 등 보물 6점을 비롯해 총 60여점에 이른다.

고려가 쇠퇴하던 14세기 말 시작돼 15∼16세기에 번성했던 분청 특별전엔 미니멀리즘, 추상적 표현주의적인 문양, 후안 미로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편병 등 현대미술의 미학과도 상통하는 분청의 아름다움이 소개된다. 뿐만 아니라 메트뮤지엄이 소장한 일본 에도 시대 도자와의 비교 전시를 통해 분청사기가 일본 도자문화에 끼친 영향도 가늠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메트뮤지엄은 예일대학교 출판부와 특별전 카탈로그를 제작할 예정이다. 내년 5월 15일엔 갤러리 토크도 마련된다.

◆도자기 전쟁=14세기 후반 고려 말은 국교였던 불교가 쇠퇴하던 시기였다. 내세를 추구하는 불교 대신 현실을 추구하는 유교가 득세하며 조선이 건국된다.

귀족들의 도자기였던 고려청자는 생활자기로 쓰기엔 한계가 있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청자도 실생활에 맞는 검소한 자기로 변하며 대범한 문양과 간략한 기법으로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다. 상감청자가 대중화의 흐름에 따라 분청자로 진화한 것이다.

조선 서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분청은 도자 기술이 빈약했던 일본인들에겐 흠모의 대상이었다. 미술사에서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으로 불린다. 왜병들은 전쟁통에 도공과 도자기를 약탈해갔으며, 특히 인기 있었던 것이 밥그릇으로 널리 쓰이던 막사발이었다. 막사발은 대충 빚은 자기를 유약통에 담갔다가 꺼낸 분청사기로 일본에 건너가서는 찻잔으로 쓰였다.

당시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을 추구하는 미학을 지닌 일본 지배계급은 조선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일본에선 조선의 찻잔을 소유하는 것이 부와 명예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조선 막사발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됐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 조선이 경기 광주일대에 백자를 생산하는 관요를 운영하면서 백자가 유행하게 되고, 16세기 중엽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분청사기의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대담하고 소박한 멋=분청의 표현 방식은 자유로운 문양, 박진감 넘치는 표현에 익살스럽고도 꾸밈없이 소박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무념무상 자연의 일부가 되어 욕심이 없는 마음을 표현한, 소박한 아름다움의 극치다.

분청은 회청색의 몸체에 백토를 바르거나 문양을 긁어내 산화철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분청사기는 청자나 백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활력에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다양한 분장(粉粧)기법, 그리고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켜 재구성한 무늬다. 지방마다 특색이 있는 다양한 기법이 사용됐다.

▶상감(inlaid): 고려 상감청자기법에서 온 것으로 바탕 흙을 파내고 백토로 채운다.

▶인화(stamped): 무늬를 새긴 도장으로 반복해서 찍은 후 찍힌 자리에 백토를 넣어 무늬를 만든다.

▶음각(incised): 그릇의 일부나 전면을 백토로 분장한 후 무늬를 선각해 음각 부분에 태토의 선각이 드러나게 하는 기법.

▶박지(sgraffito): 표면을 백토로 분장하고, 무늬를 음각한 후 배경을 긁어내는 방법.

▶철면(iron-painted): 백토 분장한 후 철분이 많은 음료로 그림을 그린다.

▶귀얄(brushed): 말총이나 돼지털로 만든 도배용 거친 붓(귀얄)으로 백토를 기면에 발라 운동감을 표현한다.

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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