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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심한데 … MMS 도입하면 지상파 독과점 더 심해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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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방송통신위원회의 2011년도 업무 추진 계획이 논란에 휩싸였다.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이 바라왔던 것들이 대거 정책과제에 담겼기 때문이다. 지상파 다채널 방송(MMS), 중간광고, 협찬고지, 광고총량제, 외주제작비율 조정 등이다. 방통위는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디어 업계는 “디지털 전환 재원 마련을 이유로 ‘지상파 특혜’ 정책이 쏟아지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하고 있다. 방통위 업무 추진 내용이 알려지자 유료방송 업계, 신문업계, 통신업계가 들끓고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논란의 핵은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방통위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이틀 앞둔 15일 기자단에 사전 브리핑을 했다. 그날 배포한 자료엔 ‘다채널 방송서비스 도입’이란 대목이 있다. 이를 위해 운영주체, 면허방식, 채널구성 등 정책방안과 법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게 방통위의 구상이다. 담당 과장은 MMS 도입이 기술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논란이 일자 방통위는 16일 추가 브리핑을 열어 ‘도입’이란 단어를 ‘정책 마련’으로 바꿨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17일 대통령 앞에서 이 대목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상파 특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건 MMS란 이슈의 폭발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KBS·MBC·SBS·EBS 4사 대표가 16일 MMS 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합의해 방통위와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생겨났다.

 MMS는 한 채널 대역대(6㎒)에서 여러 방송 서비스를 내보내는 것을 뜻한다. 현재 채널 9번에선 KBS1 TV 한 개만 나가지만, 압축기술의 발달로 고화질(HD), 표준화질(SD)급의 채널 3~4개가 방송될 수 있다. 기존 지상파 방송사에 MMS가 허용되면 가만히 앉아 채널 수가 늘어나는 혜택을 받는다. 문제는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가 지상파 독과점을 심화하고 유료방송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 윤석민(언론정보학) 교수는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빌려 쓰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전체 주파수가 자기 것인 양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과점도 문제지만, MMS를 먼저 도입한 외국의 사례를 보면 방송의 질이 떨어지는 등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상파의 기득권을 배제하고 원점에서 주파수의 효율적 운영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홍명호 정책국장도 “지상파 독과점은 극대화되고, 케이블 등 유료방송 시장은 붕괴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고 쏠림 가속화될 우려”=‘지상파 특혜 논란’의 또 다른 축은 광고 규제 완화다. 방통위가 이날 밝힌 대로 광고 규제를 풀어 시장 기반을 확대한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광고의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느냐다.

 방통위가 최근 확인한 지상파 3사군(지상파+계열 채널)의 방송광고 시장 점유율은 75%에 달한다. 시장 다양성을 측정하는 지표인 HHI 지수값도 2241에 달했다. HHI 값이 1800을 넘으면 매우 집중된 시장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광고 쏠림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브리핑에서 “‘비대칭 규제 완화’가 이번 업무보고의 큰 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비대칭 규제 완화는 기본적으로 지상파 규제를 푼다는 의미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소속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은 “미디어법 개정 취지 중 하나는 지상파 독과점을 완화해 방송시장의 다양성을 높이자는 것”이라며 “MMS든, 광고 규제든 독과점을 키우는 방향으로 정책이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방통위 “원점부터 논의 시작할 것”=방통위 이태희 대변인은 “정책 논의를 이제부터 시작하겠다는 건데 마치 방향이 결정된 것처럼 얘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준상 방송정책국장도 “MMS와 관련해 너무 큰 기대나, 너무 큰 우려를 안 해도 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졸속으로 정책을 마련하기보다 큰 틀의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과학기술대 최성진 교수는 “지상파 독과점 해소방안 등 미디어 정책의 큰 틀을 정한 뒤 그 안에서 MMS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며 “디지털 전환을 촉진해야 하는 건 맞지만 미디어 다양성 구현이나 매체 균형 발전이란 중요한 철학과 충돌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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