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달라요” … 해외연수 없앤 기초의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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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을 위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해외연수 관련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충북 괴산군의회가 최근 2011년 예산 가운데 ‘국외여비(해외연수 비용)’를 삭감하면서 밝힌 이유다. 대표적 고추 주산지인 괴산은 올해 이상기온으로 작황이 부진했다. 농민들의 소득은 예년보다 30~40%가량 줄었다. 지역구가 농촌인 의원들은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괴산군의회가 삭감한 예산은 의원 연수비 1580만원과 의회사무과 직원 연수비 1050만원 등 2630만원이다. 삭감한 연수비는 모두 주민을 위해 쓰기로 했다.

 괴산군의회 지백만(56) 의장은 17일 “우리 지역은 농민이 절반이 넘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올해는 1년 내내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며 “해외연수 예산이 큰 금액은 아니지만 고통을 분담한다는 취지로 의원 8명 모두가 동참했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는 날치기 예산처리로 시끄럽고 대부분 지방의회는 재정난에도 관광성 해외여행을 고집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지방의회는 자치단체의 어려운 재정을 돕기 위해 스스로 예산을 삭감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울산시 중구의회는 내년 해외 연수비용과 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 업무추진비를 전액 삭감키로 했다. 삭감한 예산은 의원 해외연수비 2120만원과 직원 수행여비 720만원, 국제자매도시 교류비 636만원, 직원수행비 130만원, 의장과 부의장·상임위원장 업무추진비 750만원 등 4356만원이다. 내년 의정비도 올해와 같은 3762원으로 정했다. 2009년부터 3년째 동결이다. 중구의회 박태완(53) 의장은 “중구는 세수가 적어 매년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함께 나누는 차원에서 예산을 줄였다”며 “특히 해외연수는 주민의 정서를 고려해 100% 삭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남 홍성군의회는 해외연수나 국외의정활동 등으로 배정된 연수비 2000여 만원을 반납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지역경제 여건에다 최근 구제역 확산이라는 비상상황 등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홍성군의회 김원진(50) 의장은 “연수비용은 주민들이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낸 세금”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예산 절감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예정된 해외연수를 취소하고 관련 예산을 주민을 위해 재배정한 곳도 있다. 대전시 유성구의회는 최근 의원간담회를 열고 올해 예산에 포함됐던 의원 해외연수비 1940만원 전액을 복지예산으로 전환했다. 유성구의회는 애초 세종시의 배후도시인 유성의 역할을 조명하고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이달 말 말레이시아 행정수도 푸트라자야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지방재정과 주민에게 필요한 복지기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외 연수 비용을 반납하기로 한 것. 유성구의회는 연수 대신 소속 의원별로 연구모임을 결성해 학계와 연구기관에서 만든 연구자료를 수집해 세종시와 유성의 상생 발전 방안을 공동 연구하기로 했다.

 유성구의회 윤종일(41) 의장은 “의회의 존재 이유는 지역 주민들의 고충을 듣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데 있다”며 “행정수도 배후도시의 역할을 연구하는 것은 정부와 연구기관의 도움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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