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걸려 만나다, 혜초가 실크로드서 보며 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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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에 전시된 청동마차행렬. 1969년 간쑤성에서 출토된 한나라 시대의 행차 의장 대열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 옛날 실크로드는 서쪽의 로마에서 동쪽의 경주에까지 이어졌져다. 그 길의 면모를 어림짐작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신라 승려 혜초(704~787)는 이역만리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은 ‘혜초와 함께하는 서역 기행’을 부제로 한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을 17일 개막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세계 최초로 전시됐다. 혜초가 인도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넘어 중국 신장·장안에 이른 4년간의 여정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한국인이 쓴 최초의 해외 여행기며, 세계 최고의 기행문 중 하나로 꼽힌다. 8세기 인도·중앙아시아의 문물을 알려주는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비행기로 오가는 지금은 종착지의 문물만 접할 수 있지만, 혜초는 걸어서 여행을 했기에 더욱 꼼꼼한 관찰자가 될 수 있었다. 전시장에는 두루마리 형태 책의 끝부분만 일부 펼쳐놨다. ‘60㎝ 이상은 펼치지 말라’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대여 원칙에 따라서다. 대신 복제본은 길게 펼쳐놔 전모를 헤아리게 한다.

 ◆동서문물의 교차로=전시는 혜초가 걸어간 그 길의 문물을 담아낸다. 동에서 서로 흘러갔던 중국 비단, 반대로 서에서 동으로 흘러간 불교의 흔적 등을 말이다. 중국 영하성 고원에서 발견된 6세기 동로마 제국의 금화, 보살상이라기보다 그리스 여신상이라 짐작되는 여인의 나신을 염색한 면직물 등이 동서 교류의 증거물이다.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둔황 석굴의 실물 크기 모형도 전시장에 그대로 옮겨왔다. 내년 4월 3일까지. ‘왕오천축국전’은 3개월 동안만 전시한다. 관람료 1만원.

 ◆신라 왕릉의 모든 것=국립경주박물관에선 황남대총 특별전 ‘신라왕, 왕비와 함께 잠들다’가 열리고 있다.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었던 경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전시다. 황남대총은 1973년 발굴된 국내 최대 규모 왕릉으로 왕의 무덤에 왕비의 무덤을 덧붙여 만든 쌍무덤이다. 여기에선 유물이 5만8000점이나 쏟아졌는데, 놀랍게도 이 전시에선 이 많은 출토 유물을 모조리 보여준다.

 그간 황남대총 전시가 출토품 중 고갱이만 골라 감상하도록 연출했다면, 이번 전시는 신라 고분 속에 들어간 듯 실감나게 만든다. 신라의 화려한 황금문화를 보여주는 금관과 금제 허리띠, 금제 장신구류가 왕과 왕비의 관 속에 눕힌 채 관람객을 맞는다. 신라 유물 중 유일하게 완형을 갖춘 은관(보물 631호·사진)도 있다.

 로마에서 흘러왔다 하여 ‘로만 글라스’라 분류되는 봉황머리형 유리병, 터키석이 박힌 팔찌 , 흑갈유병 등 마립간 시기 신라의 왕성한 국제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도 많다. 첩첩이 쌓아둔 철제 무기류, 겹겹이 쌓은 토기류 등은 양으로 먼저 압도한다. 전시는 내년 2월 6일까지.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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