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김귀현 … 땀으로 꿈 키우던 섬아이, 마침내 아르헨서 피어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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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현은 아르헨티나 언론에서도 주목하는 선수가 됐다. 지난 10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서쪽에 위치한 벨레스의 홈 경기장 아마필타니 스타디움에서 아르헨티나 유력지 클라렌과 인터뷰를 한 뒤 사진촬영을 하는 장면. [김귀현 제공]


“가난하다고 꿈까지 가난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영화 ‘맨발의 꿈’에서 나온 대사다. 영화는 남태평양 작은 섬 동티모르 아이들이 한국인 지도자를 만나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내용이다. 영화처럼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려다 은사를 만나 꿈을 펼친 섬마을 소년 김귀현(20). 그가 14일(한국시간) 아르헨티나 프로축구 3대 명문 클럽인 벨레스 사르스필드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 3년 계약에 한국에 생활비를 보낼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그는 “주전으로 도약해 더 많은 경기에 뛰는 것이 목표다. 내년에 팀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남미 컵대회)에 출전해 기회가 많을 것이다”며 웃었다.

인구 3740명의 작은 섬 전남 신안군 임자도 출신의 축구선수. 가난한 청각장애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갖은 고난 끝에 ‘아르헨티나 드림’을 향해 나아간 김귀현은 본지가 2005년 10월 6일에 그 사연을 소개하며 유명해졌다. 이후 방송에 그의 이야기가 나갔고,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도 그를 취재했다. 어린 나이에 들뜰 법도 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김귀현은 “언론에 나간 뒤 많은 팬이 응원해줬다. 지금까지도 선물을 보내주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 덕분에 버텨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만난 아르만도 감독을 따라가 시작한 아르헨티나 생활은 고비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김귀현은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가장 큰 고민은 키였다. 2006년에 1m70cm이던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중앙수비수를 보던 김귀현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옮겨야 했다. 기술이 좋은 아르헨티나에서 미드필더로 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김귀현은 “아르헨티나 아이들은 4살 때부터 축구공과 함께 자란다. 나는 13살 때 축구를 처음 시작해 기술이 많이 부족했다”고 했다. 김귀현은 자신의 장기를 살리는 방법으로 새 포지션에 적응했다. 그는 “나는 작고 빠르다. 그리고 근성과 투지 넘치는 플레이가 장점이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어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마스체라노처럼 투지 있고 재치 있게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요즘은 패스를 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고 말했다. 박지성(맨유)을 동경하는 그의 눈은 유럽을 향하고 있다.

 동양인에 대한 차별도 넘어야 했다. 길을 다닐 때마다 ‘치노(중국인)’라는 놀림을 들었다. 그는 “아르헨티나는 인종차별이 심하다. 그런 차별 때문에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귀현은 이를 악물고 코치가 시키는 훈련을 남들보다 딱 2개씩 더했다. 6600대 1의 경쟁을 뚫고 벨레스 산하 유소년 클럽에 들어가서도 개인 훈련을 빼놓지 않았다.

 가장 큰 상처는 2008년 그가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다. 조동현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울산 전지훈련 합류 3일 만에 무릎 부상으로 하차했다.

 지금 김귀현은 태극마크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아르만도는 제 아버지 같은 분이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임자도 특산물인 대파를 뽑거나 천일염 밭에서 일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아르헨티나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지도자 자격증을 딸 것이다. 선수 생활을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가 나처럼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축구학교를 열 계획이다. 우상인 홍명보 감독님처럼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말했다. 
김민규 기자

김귀현은 …

■ 생년월일 : 1990년 1월 4일 ■ 체격 : 1m70㎝ · 70kg

■ 소속 : 벨레스 사르스필드(아르헨티나)

■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 존경하는 선수 : 홍명보 감독, 마스체라노(스페인 바르셀로나)

■ 가족관계 : 부모, 1남 4녀 중 막내

■ 축구입문 : 남해 해성중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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