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업체 빠른 회복, 반도체 입지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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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시에 대만 과학위원회(NSC) 부회장은 사상 최대의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직후 하이테크 산업체가 밀집해 있는 신추를 방문했다. 3백여개에 달하는 반도체 생산업체들의 피해규모를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시에 부회장은 현장을 둘러본 결과 전기공급중단으로 생산설비에서 수십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고, 전세계의 공급처와 관계가 단절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전기가 신속히 공급되지 않을 경우 하루 손실액이 약 6천만 달러에 달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NSC는 즉각 정부의 비상각료회의에 이러한 사정을 보고하고 국영 대만전력으로부터 신추지역에 최우선적으로 전기공급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지진이 발생한 지 6일이 지난 9월27일 신추공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대부분의 업체들은 전기공급을 다시 받을 수 있었다. 시에 부회장은 “신추는 대만과 전세계의 전기·가전업체들에 매우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결과”라고 말했다. 신추지역 업체들은 현재 전세계 반도체 공급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만의 지진에서 피해를 본 대부분의 반도체 생산업체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업체들은 대만의 신속한 원상회복에 크게 감명받고 있다. 한 세기에 한 번쯤 발생할 수 있는 이번 지진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쟈딘 플레밍의 반도체 분석가 앤드류 린은 9월 말까지 약 50%가 복구됐으며 10월까지는 75% 가량 복구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1월까지는 완전 복구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린은 반도체칩 생산 업체들보다는 개인컴퓨터나 노트북 컴퓨터 업체들의 피해가 보다 심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이서나 칸타같은 대규모 업체마저 머더보드 등 하드웨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만지진 피해 규모는 총 2억~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유나이티드 마이크로일렉션(UMC)의 한 관계자는 지진의 경제적 충격이 너무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미국·유럽·일본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세계 3대 반도체 회사 중 하나인 UMC의 경우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규모는 4천만 달러에 불과하다. 1년 매출규모가 7억8천만 달러에 비하면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만한 피해액은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이번 지진으로 세계 반도체업계를 리드하고 있는 대만의 입지는 약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의 특성상 공급처를 쉽게 바꿀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9월28일까지 피해복구를 50% 가량 마무리지은 TSMC의 론 노리스 해외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지난 95년부터 미국과 싱가포르 등의 해외생산기지를 확충해 물량공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UMC의 홍보관계자도 반도체 업계의 디자인 사이클이 길어 쉽게 공급처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 최첨단 부품을 공급할 만한 다른 대안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도 공급처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클 하라 Nvidia미 그래픽 디자인 칩 업자는 최첨단의 제조기술을 충족시켜주는 곳은 세계에서 대만 뿐이라고 말한다.
일본도 이 분야에서는 대만에 다소 뒤져 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홍콩에 본부를 둔 브이텍도 반도체는 물론 액정화면 등을 대만에서 조달한다. 대만 지진으로 물량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던 공급처를 바꾸는 것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대만지진을 계기로 세계시장 진출을 노리던 해외의 경쟁업체들의 계산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클라우디오 로도는 이번 지진으로 반도체의 공급을 한 곳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역설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 후발국가들이 진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추의 경제 분석가 왕 캉은 그러한 평가를 일축한다. 후발국가들이 대만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리드하기까지의 과정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은 회로설계에서부터 소프웨어 제작, 게다가 뛰어난 인력을 갖추는 데까지 20년 가까이 걸렸다. 이러한 것은 쉽게 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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