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세 상습체납자 대여금고 여니 85억 약속어음, 스위스 명품시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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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시중은행 지점에 성남시 세정과 소속 직원 3명이 경찰관 한 명과 함께 들이닥쳤다. 이들이 고액 체납자의 개인 대여금고에 대한 수색을 실시하니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과 신분증을 제시하자 은행 직원이 개인금고가 있는 밀실로 안내했다. 함께 온 열쇠업자가 전기 드릴로 개인금고를 열자 고급 시계 2점이 나왔다. 1000만원을 호가하는 스위스제 명품이었다. 다른 금고에선 85억원짜리 약속어음이 나왔다. 금고를 대여한 이들은 돈이 없다며 1000여만원의 지방세를 내지 않고 버티는 고질 체납자였다. 대여금고는 은행이나 증권회사 등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빌려주며 주로 귀금속이나 현금·어음·유가증권 등을 보관한다.

 이에 앞서 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세정과 소속 ‘제로텍스 특별기동팀’은 권선구 권선동에 사는 차모씨의 아파트를 기습 방문했다. 차씨는 50평형대 고급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지방세 1900만원을 1년 동안 체납하고 있다. 기동팀은 차씨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가택 수색에 나섰다. 거실에 있는 수백만원 상당의 골프채 2세트와 산삼 1뿌리를 압류했다. 팀원들은 1시간 후 지방세 6900여만원을 체납 중인 매탄동 유모씨 집으로 이동해 벽걸이 TV와 양주 30병을 압수했다.

 지자체가 돈이 있으면서 지방세를 내지 않는 이른바 ‘배째라 식’ 고액 체납자들에게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부동산 및 예금 압류,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의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대여금고 압류 또는 가택수색까지 나섰다. 숨겨둔 재산을 찾아내 세금을 징수하겠다는 것이다.

 성남시 기동징수팀 정귀석 주무관은 “고액 체납자 대부분은 본인 명의의 부동산이나 예금은 없지만 은행에 대여금고를 개설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세징수법에 따라 각 은행에서 대여금고 보유 정보를 제공받아 대여금고를 압류하고 개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의 이런 작전은 적중했다. 성남시는 3월부터 최근까지 고액 체납자의 대여금고 27개를 강제 개봉했다. 이들 금고에서는 현금과 외화, 금붙이, 양주 등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1000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시계에서부터 5만원권 뭉칫돈, 황금열쇠, 고급 양주 등 다양했다. 시는 압류한 내용물은 체납처분 절차를 진행해 현금, 유가증권 등은 체납액에 충당하고 귀금속 등 동산은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에 공매 의뢰했다. 이를 통해 세금 2억7300여만원을 환수했다. 시는 6일부터 17일까지 고액 체납자 대여금고 22개에 대해 추가로 강제개봉조치에 나섰다. 대여금고 압류 또는 개봉 통보에도 상당수 체납자들이 자진 납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원시는 7~9일 비양심 고액 체납자 3명에 대한 가택수색에 나서 산삼 뿌리와 골프채, 양주, 현금 250만원 등을 압수했다. 시는 올 들어 10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 144명에 대한 대여금고 압수와 가택수색을 통해 37억5000만원을 징수했다. 대여금고를 가지고 있는 고액 체납자는 주로 성남 분당과 수원 영통·권선구 등에 거주했다.

 수원시 이현식 제로텍스 특별기동팀장은 “대여금고 강제개봉은 압류될 만한 재산을 대여금고에 감춰두고 버티던 체납자들에게 납세하게 하는 강력한 징수수단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진·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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