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제츠·왕광야·장예쑤이 “우린 LSE 동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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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런던정경대(LSE·London School of Economics)가 중국 외교관을 키웠다.”

 중국 외교·통상 분야를 이끌고 있는 중견 외교관 상당수가 문혁 시기인 70년대 초 중국 정부가 LSE로 유학 보낸 선발학생 출신들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가 14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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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은 현재 중국 외교의 중추를 맡고 있다. 양제츠(楊潔<7BEA>) 외교부장(장관)을 비롯해 왕광야(王光亞) 홍콩·마카오 판공실주임(전 외교부 부부장), 장예쑤이(張業遂) 주미대사, 저우원충(周文重) 보아오포럼 사무총장(전 주미대사), 탕궈창(唐國强) 주노르웨이 대사, 쑨위시(孫玉璽) 주폴란드 대사 등 고위급 중 10여 명이 LSE 출신이라고 SCMP는 전했다. 특히 장 주미대사와 부인 천나이칭(陳乃淸) 전 노르웨이 대사는 외교부에서 유명한 LSE 동문 커플이다. 올 3월 장 대사가 부임하면서 중국 외교부의 LSE 출신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자 대사’였던 천은 보직 없이 남편과 동행해 ‘미시즈 앰배서더(Mrs. Ambassador)’라 불렸다.

 대규모 유학생 파견 프로그램은 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계기가 됐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기로 결심한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데 역점을 뒀다. 전국에서 선발된 20~30대 우수 인재들의 해외 어학연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처음엔 70년 국교를 맺은 캐나다로 학생들이 몰렸지만 72년 영국과 수교하면서 영국이 각광을 받았다.

 72년 가을 학기부터 중국의 젊은이들은 LSE를 비롯해 배스대, 일링 칼리지, 애틀랜틱 칼리지 등에 등록했다.

 특히 LSE 월터 애덤스 학장이 주영국 초대 대사인 쑹즈광(宋之光)에게 중국 대사관이 보증하면 2년 과정의 유학 코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면서 LSE가 장래 중국 외교관들의 요람이 된 것이다. 학생들도 문혁 시기 금지됐던 사회과학 학문에 대한 갈증 때문에 이 분야에 특히 강했던 LSE로 많이 몰렸다고 한다.

 사회과학 학풍이 강한 LSE에서 외교·경제·사회·정치학 등을 수학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뜻을 펼칠 수 있는 직업으로 외교관을 택하게 됐다. 미첼 야후다 LSE 명예교수는 “서구 사상과 정치 문화에 익숙했던 유학생들의 경험은 서방과의 외교에 낯선 중국 관가에서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풀이했다.

 1895년 개교한 LSE는 경제학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 많은 학문적 성과를 냈다. 이곳 출신 교수와 학생 16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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