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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투어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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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물의 도시’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된 ‘투어리스트’. [소니 픽쳐스 제공]


앤절리나 졸리·조니 뎁 주연의 ‘투어리스트’를 액션스릴러로 기대하고 티켓을 끊는다면 필시 실망감이 클 터다. 오해한 사람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미 올 여름 졸리는 ‘솔트’에서 등골 오싹한 ‘엘리베이터 액션’으로 안 그래도 강했던 액션스타로서의 이미지를 더 높이 끌어올렸으니 말이다.

 ‘투어리스트’는 액션보다 약간의 모험이 가미된 두 미남미녀 배우의 로맨스물에 가깝다. 가깝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자장수, 멀리는 ‘가위손’의 에드워드 등 항상 기괴하고 뒤틀린 인상으로 기억되던 조니 뎁이 수수한 남자로 나와서 더 반갑게 느껴진다. 배경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베니스이니 로맨스물로서 3박자는 다 갖춘 셈이다.

 게다가 졸리는 ‘여전사’ 이미지와는 또 다른 여성미를 한껏 발산한다. 그간 액션을 하느라 걸치지 못했던 드레스와 보석 등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준다. 미국 시골마을 수학강사인 프랭크(조니 뎁)는 베니스행 기차 안에서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 엘리제(앤절리나 졸리)를 만난다. 둘은 기차 식당칸에서 저녁을 함께 하고 헤어진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베니스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여자는 희대의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중 범인과 사랑에 빠진 요원이었다. 남자는 홀딱 반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순정파로 그려진다. 적어도 반전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반전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다시, 이 영화가 스릴러가 아니라 로맨스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면 반전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놀랍지 않다. 콧등 한번 찡긋거리고 눈썹 한번 밀어 올리는 연기로 어수룩한 시골선생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뎁, 드레스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으면서도 단 한번도 남성에 대한 주도권을 놓지 않는 당당한 졸리. 둘의 미묘한 앙상블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최대치다.

 연출은 ‘타인의 삶’으로 2007년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던 플로리언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타인의 삶’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도청을 하던 비밀경찰의 내면에 일어나는 변화를 묘사한 예술성 높은 수작으로 각광받았다.

그의 할리우드 진출작 격인 ‘투어리스트’는 꼭 이 감독이 맡지 않았어도 무방했을 법한 평작에 가깝다(실제로 여러 감독이 거론됐고 교체를 거듭하다 그에게 돌아갔다). 그러니 “할리우드에 영혼을 팔았다”는 악평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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