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내부 균열 심각한 육상연맹, 걱정되는 대구세계선수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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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국 육상은 31년 묵은 남자 100m 기록을 단축시켰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 4개를 획득했다.

 겉으로는 이렇게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내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라는 거사를 앞두고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내부 균열이 심각하다. 특히 대한육상연맹 집행부 내 고위 인사의 전횡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육상연맹은 최근 장재근 트랙 기술위원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연맹의 일관성 없는 행정에 대해 쓴소리를 자주 하는 바람에 ‘괘씸죄’에 걸렸다는 게 다수 육상인들 시각이다. 장재근 전 기술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부임한 이후 단거리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하고 혹독하게 훈련시켜 올해 6월, 31년 된 남자 100m 한국기록을 깨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때까지 무보수로 일하던 장 전 위원장이 신기록 수립 후 보수 지급을 요구하자 육상연맹은 7월부터 그를 대표팀 운영에서 배제시켰다.

 실질적인 코치 역할까지 했던 장 전 위원장이 대표팀에서 물러나고 400m 전문의 이종윤 코치 지도 아래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치렀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단거리 종목에서 참패했다. 100m 대표 김국영과 임희남은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고, 400m 계주는 여호수아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기권했다. 장 전 위원장의 퇴진으로 100m·200m·400m 계주 등 단거리 종목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지도자가 1년 새 세 차례 바뀌게 됐다. 이 코치가 400m 전문 지도자라서 내년 8월 대구 세계선수권을 겨냥해 새 단거리 지도자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선수들은 육상연맹의 잦은 코치 교체에 답답해하고 있다.

 육상연맹의 비효율적인 일처리는 이뿐이 아니다. 최근 태릉선수촌에 한 달 동안 67명의 선수를 입소시키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태릉선수촌 관계자는 “구체적인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많은 선수를 보내겠다고 알려와 공간 부족을 이유로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7~9월 ‘드림 프로젝트’로 유망주 김국영과 박봉고를 미국에 연수 보낸 것도 실패작이라는 후문이다. 경비 절감을 이유로 선수 보호를 위한 마사지사, 트레이너 등을 지원하지 않아 ‘미국에서 밥만 해먹다 왔다’는 게 당사자들의 자조섞인 후일담이다. 이들 중 일부는 전국체전에서 부상으로 기권했는데, 훈련부족 탓이라고 육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이 같은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로 인해 육상인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인데도 오동진 연맹회장은 이 간부의 그림자에 가려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육상연맹의 한 임원은 “내년 대구세계육상대회를 어떻게 치를지 걱정이다. 결국 회장이 책임지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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