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교향곡' 왜 송년단골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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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교향곡' 이 송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가 된 것은 헤어 스타일에서부터 베토벤의 이미지를 닮으려고 했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1846년 드레스덴에서 열린 자선음악회에서 1백50명의 연주자를 위한 3관편성으로 편곡, 지휘했을 때부터.

'합창' 이 사랑받는 것은 인류애와 지상낙원을 찬양하는 내용 때문이다.

'전원교향곡' 이 자연에 대한 예찬이라면 '합창교향곡' 은 인류에 대한 찬양이다. 로망 롤랑은 '합창' 이 "인류애와 사해동포주의, 이성과 환희로 건설된 이 땅위에 천국 복음을 선포하는 것" 이라고 파악했다.

이와 동시에 '합창' 은 권력과 차별에 대한 저항이었다.

니체는 '합창' 이 "노예가 자유인이 되는 것과 사람들 사이의 벽들이 허물어짐을 세상에 선포한다" 고 말했다.

레닌과 엥겔스는 베토벤의 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합창' 을 즐겨 들었다.

베토벤이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찬가' 를 음악화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1800년경. '합창교향곡' 이 완성된 것은 1824년의 일이다.

25년동안의 산고(産苦) 끝에 완성된 이 곡을 가리켜 리스트는 '음악의 거대한 피라미드' '판테온(萬神殿) ' 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합창' 은 메테르니히의 명령으로 초연 당시 4악장의 제목이 '자유의 찬가' 에서 '환희의 찬가' 로 바뀌는 불상사를 겪었다.

'합창' 은 그후 정치행사에서도 자주 연주됐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89년 12월 23일 2차대전 참전국 출신 단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베를린 필하모니홀에 모여 번스타인의 지휘로 '합창교향곡' 을 연주했다.

1차대전이 끝난 후 1918년 12월 31일 니키시 지휘로 열린 '평화와 자유에 바치는 콘서트' 에서 '합창' 이 연주됐고 베토벤 서거 1백주년 기념공연, 36년 베를린올림픽 개막공연, 37년 파리 독일박람회, 42년 히틀러 생일축하연을 장식한 것도 이 '합창교향곡' 이었다.

일본에선 매년 12월 도쿄 스미다 국기원에서 5천명이 모여 '다이구' (第九) 를 연주하는 게 오랜 전통이며 국내에서는 코리안심포니가 89년 12월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5천명 대합창 연주회' 를 개최, 최다 연주자 참여 공연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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