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는 한국이 동북아 중심점이 될 기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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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 22면

8일 오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대담에서 윌리엄 라이백 토론토센터 은행감독자문기구 의장은 한·미 FTA에 대해 “이미 시장은 확대됐다. 어떻게 잘 대응하는가는 미래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전문기자, 라이백 의장, 이정호 금융위원회 외신대변인. 신인섭 기자

“득실에 앞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동서양 시장의 융합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미국과 일본, 혹은 미국과 중국이 조만간 FTA를 타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 믿지 못한다. 한·미 FTA는 한국이 동북아 지역을 아우르는 중심점(pinnacle)이 될 기회다.”
토론토센터 은행감독자문기구 윌리엄 라이백 의장은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해 “FTA의 효과를 단시간에 평가할 수는 없다”며 “양국이 공동시장이라는 ‘툴(tool)’을 만들고 공동 경쟁의 룰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윈-윈”이라고 말했다.

김정수·라이백·이정호 3자 대화

라이백은 한국경제교육협회 초청으로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국제협상력 강화’ 세미나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한국을 떠난 지 1년이 넘었지만 그가 속한 토론토센터는 한국경제교육협회와 협력 관계를 구축, 금융 리더십교육 교류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그를 8일 오전 중앙SUNDAY가 만났다. 중앙일보 김정수 경제전문기자와의 대담에서 그는 한·미 FTA에 대한 견해도 풀어놓았다. 2007년 10월부터 6개월간 금융감독원 특별고문으로 일했던 인연 때문인지, 그는 대담 중 한국을 ‘우리(we)’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라이백 의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은행감독 부문 수석이사를 거쳐 홍콩 금융당국 수석부총재를 지냈다. 대담 사회는 이정호 한국금융위원회 외신대변인이 맡았다. 이정호 대변인은 BNP파리바은행, 맥쿼리증권 등에서 일한 국제금융통이다.
 
이정호(이하 이): 한·미 FTA 재협상을 놓고 한국이 안보 때문에 이익을 내줬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김정수(이하 김): 반면 정부는 한·미 동맹을 고려하면 최대한 잘한 협상이란 입장입니다. 두 나라 간 손익을 따져보면 어떨까요.

라이백: 일자리 창출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가장 절박한 현안이었습니다. 이번 재협상을 통해 현안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게 오바마의 자랑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전 정권이 합의한 협약을 거부하고 재협상하는 악수를 뒀습니다. 앞으로 한국과의 협상에서 미국의 주도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합의에 이른 협정·협약을 이행하는 건 국가 간의 신뢰에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반면 한국은 세계 모든 국가와 직접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시장을 확보했다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대신 한국 시장을 다소 잠식당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부담도 안게 됐죠.

김: 하지만 한국민들은 아직 재협상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라이백: 그것이 바로 한국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입으론 글로벌을 지향하면서 생각은 국내에 머무르는 거죠. 일반 시민에게 (협상이) 도움이 된다고 납득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정부는 국내 현실을 잘 풀고 싶겠지만 까다로운 일이에요. 그게 정치죠. 물론 대중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견해엔 동의합니다.

김: 어떻게 해야 국민이 납득할까요.

라이백: 기다려야죠. FTA는 지금까지 대개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기대만큼인지는 이견이 있지
만 적어도 나쁜 결과를 낳은 FTA는 없었습니다. 단일 시장의 효과를 단시간에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 이번 재협상 대상은 아니었지만 한·미 FTA의 금융 쪽 얘기를 해보죠. 2007년 타결된 협상에서
한국은 미국과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자본과 금융상품을 거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미국의 금융상품
이 한국에서 판매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금융환경이 달라졌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선 규제를 강화하는 논의를 했습니다. 한·미 FTA 협상과 G20 정상회의의 논의 내용은 그런 점에서 일부 충돌하고 있습니다.

라이백: 한·미 FTA에서 합의한 금융시장 개방이 곧바로 미국 금융계의 독소적인 파생상품을 한국 시장에 들여와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미국의 파생상품은 위험을 완화하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그 자체가 투기 대상이 돼 버렸습니다. (한·미 FTA가 합의됐다고 해서) 미국 기업이 이런 엉터리 제품(the snake oil)을 한국에서 팔도록 내버려 두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들어오려 한다면 막아야죠. 국내 시장이 그 기능을 해야 하고요.

김: 그렇지만 시장 개방에 합의한 FTA와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현재의 시장 트렌드 사이에 균형을 잡기가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라이백: 물론 시장 자율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금융시장을 잘 감독하는 건 까다로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하진 않아요. 한국은 이미 견고한 토대를 갖췄습니다. 금융회사들은 각각의 장단점을 지녔고 목적과 목표, 비즈니스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2007년이나 지금이나 한국이 시장을 개방할 필요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금융 자율화 없이는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저는 한국에서 금감원 특별고문으로 있을 때도 외환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외환시장을 더욱 풍요롭게 발전시키지 않고는 절대로 금융의 중심이 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이: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의 성과 중 하나는 금융안정위원회(FSB)가 마련한 금융규제 개혁안에 대한 합의입니다. 금융기관의 자본 요건을 강화한 이번 합의를 한국은 준수할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의 은행은 소매금융기관에 머물지 않고, 자본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중장기적 과제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엔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라이백: 얼마만큼 나사를 풀어 자본을 극대화하고 은행의 경쟁력을 키울 것인지는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균형입니다. 감독기관이 은행의 자본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위험 가치가 어떤지 얘기해야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금융기관 감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관리(management)입니다. 등급을 관리하는 거죠.

김: G20 정상회의 개최는 한국에 역사적인 전기가 됐다고 시각이 많습니다. 국제 금융계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라이백: 당연히 긍정적입니다. 회의 주최자(host)라는 건 의제를 설정할 권한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이 국제회의에서 단순히 듣는 입장에서 자신의 명확한 위치를 갖는 입장으로 발전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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