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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2년 연속 ‘한국 최고의 돼지’ 키워낸 고봉석 제주 봉영농장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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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석씨는 1971년생 돼지띠다. 제주대학교 축산학과 석·박사 과정까지 마친 그는 양돈축협 직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직장생활은 길지 않았다. “내 농장을 갖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처음엔 반대했던 인생의 반려자는 이제 그의 꿈을 실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동지가 됐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봉영농장. 주인 고봉석(39)씨와 고영미(40)씨 부부가 운영하는 이 농장에서 출하된 돼지는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실시하는 평가에서 올해까지 2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육질 1등급 이상의 돼지고기가 91%나 됐다. 비결이 궁금했다.

글=양성철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영하

농장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최근의 구제역 파동으로 “외부인을 만나지 않겠다”고 거듭 거절하던 고씨 부부는 철저한 소독과 방역복 착용 등 완벽한 규정 준수를 약속하고서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취재 차량은 아예 멀찌감치 농장 밖에서 대기해야 했고, 출입구에서부터 생석회로 신발 바닥을 소독하고 난 뒤 다시 미생물과 화학제를 이용한 용액으로 또 소독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양돈업을 시작한 계기는.

두 해 연속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돼지를 길러낸 제주 봉영농장의 고영미고봉석(오른쪽)씨 부부.

“1999년 봄 제주양돈축협에 입사했다. 97년 아내와 결혼해 첫딸을 둔 터라 솔직히 돈벌이가 급했다. 축산직 공무원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는 외환위기 직후로 공무원 채용 자체가 동결된 상태였다. 포기하고 축협에서 열심히 일했다. 정책자금 대출과 농가 지도, 구매업무 등 맡기는 대로 다 했다. 그러다 한 조합원으로부터 ‘농장 하나가 매물로 나왔다’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갑자기 어린 시절 꿈이 밀려왔다. 무작정 그 농장을 찾아갔고, 반나절 만에 계약금 1500만원을 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누군가 낚아채 갈 것 같았고, 덜컥 욕심도 났다. 그게 시작이다.”

●상당히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 영미씨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없다면 불가능했다. 제주시 외곽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아이는 갓 돌을 넘기던 때였다. 우리가 본 농장은 말이 농장이지 비닐하우스 2채와 다 허물어져가는 관리사 1채뿐이었다. 비닐하우스는 개사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었고, 40~50마리의 개가 짖어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무모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런데 내가 아내를 졸랐다. 나는 ‘제주 흑돼지 자돈 발육에 따른 포유능력 연구’로 축산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내가 축산 전문가고,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어쩔 수 없이 아내가 승낙했다.”

●순탄한 시작이 아니었을 텐데.

 “그렇다. 아이는 고향(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어머님 집으로 보냈고, 우리 부부는 아파트 전세금을 빼고 나와 농장의 비닐하우스에서 지냈다. 2004년 말 직장에 사표를 내기 전까진 농장의 비닐하우스에서 숙식했다. 농장도 현금 6500만원을 내고 인수하는 조건이어서 부담이 만만찮았다. 어머니는 넥타이를 매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내가 자랑스럽다며 극구 말렸다. 고민하던 때 아버지가 슬며시 내 손을 잡았다. ‘주변을 보니 양돈업이 돈 좀 버는 것 같더라’고 어깨를 두드려줬다. 아버님이 농사로 번 돈으로 사둔 감귤밭 5000㎡를 담보로 자금을 해결했다. 아버님은 ‘망해도 그 밭 하나만 날리면 된다’고 하더라. 이를 악 물었다.”

●짧은 직장생활이지만 사업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정말 사람과의 인연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껏 5년 직장을 다녔지만 조합원들에게 정말 신뢰를 쌓았다. 성심성의껏 대했다. 그래선지 양돈업을 한다고 하니 한 조합원이 선선히 어미 돼지 50마리를 내게 팔았다. 그것도 모두 새끼를 밴 돼지들이었다. 축산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축협 대부업무를 맡은 적이 있어 각종 저리의 정책대출자금도 알고 있었다. 내가 끌어모을 수 있는 돈이 어디 있다는 걸 남들보다 잘 안 셈이다.”

●유독 봉영농장의 돼지가 다르다. 육질 1등급으로 전국 1위다.

 “농장을 인수하고 1년이 채 안 된 2003년 3월 말을 잊을 수 없다. 내가 키운 돼지를 처음으로 시장에 출하했다. 1t 트럭에 15마리의 돼지를 싣고 제주시 축산물공판장으로 갔다. 한 마리당 35만원을 받았다. 농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아내와 펑펑 울었다. 너무 뿌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분통이 터졌다. 내가 키운 돼지보다 값을 더 쳐주는 돼지들이 있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지금의 전국 1위는 거저 얻은 게 아니다.”

● 나름의 비결이 있을 텐데.

 “우리가 키우는 돼지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돈사는 기온·습도가 항상 안락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자동제어시스템으로 관리된다. 물론 먹는 물 역시 청정 제주의 물이다. 사료는 성균관대 식품영양학과의 자문에 따라 비타민과 미네랄을 배합한 사료만 먹인다. 항생제는 아예 쓰지도 않는다. 체중이 115㎏ 미만의 돼지는 출하하지도 않고, 억지로 기준 체중이 되도록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이 정도만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참고로 축산 동지인 내 아내는 지난해 농업마이스터대학 축산 전공 2년 과정을 이수했다. 아침에 눈뜨고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부부가 돼지 얘기만 한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면 답은 나온다.”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들린다.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내 돈을 털고, 제주도의 지원도 받아 2007년 3개월간 유럽 3개국 연수를 다녀왔다. 그중에서 네덜란드의 한 축산농장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았다. 첨단관리시스템과 철저한 품질관리, 최고의 친환경시설 모든 게 사실 내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대상이다. 1년 뒤 네덜란드의 그 농장을 혼자서 다시 찾아갔고, 아내가 못 미더워하기에 지난해 5월 결혼기념일에 기념여행이라고 꼬드겨 아내와 그 농장에서 1주일을 살며 또 배웠다. 그 농장 주인 이름은 ‘피터 드루이프’다. 꼭 넘어뜨리고 싶은 내 경쟁 상대다.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전에 내 꿈이 이뤄질 것이다.”

j 칵테일 >> 제주 토박이 동성동본 고씨 부부

과거 동성동본 간 혼인이 불허되던 시절 제주 토박이 고씨 부부는 한시적 구제책이 나오던 때 어렵사리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너무 좋아 죽도록 쫓아다녔다”는 고씨의 애원 덕에 아내 영미씨는 흔들렸고, 그렇게 결실을 맺은 이 부부에겐 지금 두 딸과 두 아들 4남매가 있다.

 농장 인수 후 찾아간 작명가는 두 사람의 이름 중 받들 봉(奉)자와 영화 영(榮) 두 글자를 따 농장 이름으로 지어줬다. 이름이 좋아선지 처음 어미 돼지 50마리로 시작한 일이 지금은 어미 돼지 200마리에 총 사육 마릿수 2300마리로 성장했다. 올해 출하한 돼지는 4000마리나 되고, 연 매출액은 15억원을 웃돈다.

 고씨 부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지난해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의 한 농장을 또 사들여 제2 봉영농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번 돈은 거의 전액을 농장의 시설 확보와 확장 등에 재투자했다. 민간농장이 보유하기 어려운 각종 자동화 설비와 가축분뇨 처리시설, 각종 악취 저감설비 등을 갖추고 있다. 이 농장에서 나오는 축산 분뇨는 농장 안에서 모두 재처리돼 액비로 뿌려진다. 고씨 부부는 1만3000㎡의 감귤 과수원과 3만㎡의 무·배추밭을 또 사들였고, 액비가 뿌려지는 장소가 이곳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또 예감이 좋다. 감귤과수원의 경우 최고품질 당도인 ‘12브릭스’까지 나와 고씨는 “조만간 돼지가 아닌 최고 품질의 농산물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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