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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코스닥’ 위한 제도 개선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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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강명재
한세대 경영학부 겸임부교수

코스닥 등록기업에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하면 한국거래소는 회사 측에 이 사실을 즉시 공시토록 한다. 동시에 해당 종목을 거래정지시킨 후 15일 안에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되는지 결정한다. 이때 실질심사 대상기업으로 판정이 날 경우 다시 15일 안에 상장폐지를 최종 결정할 ‘상장폐지실질심사위원회’를 구성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코스닥시장 상장폐지 실질심사 지침’ 제10조에 따르면 심의 3일 전까지 심사위원장 및 심의위원을 개별 선정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선정된 심사위원들은 주어진 며칠 안에 모든 내용을 검토하고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횡령·배임사건 대부분의 경우는 그 진위를 단기간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거래소 직원들이 정리해준 자료에 의거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유가증권시장에서도 횡령·배임이 발생하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문제는 두 시장에 적용하는 기준이 확연히 다르다는 데 있다. 유가증권시장의 경우엔 “회계반영 또는 법원판결 등에 따른 확정금액이 최근 사업보고서에 반영될 경우 자본전액잠식에 해당하게 된 때(유가증권시장 상장폐지 실질심사 지침 제4조 5호)”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반면 코스닥시장의 경우엔 “횡령·배임으로 상장법인이 상당한 규모의 재무적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코스닥상장규정 제38조)”라고만 돼 있다. 유가증권시장이 법원 확정판결이나 전액 자본잠식이라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코스닥시장은 애매모호한 기준 때문에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최근 6개월 사이 유가증권시장에서도 아티스(44억), 휴니드(50억), 아인스(87억), 티엘씨레저(145억) 등 이 횡령·배임사건에 휘말렸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하나도 거래정지나 실질심사를 받지 않았다. 횡령·배임금액을 최근 재무제표에 반영할 경우 자본전액잠식에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회계 반영 또는 법원의 판결 등이 있고서야 상장폐지 실질심사가 이루어지는 데 반해 코스닥시장은 임직원의 횡령·배임 혐의가 확인되는 시점에 실질심사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만일 횡령·배임으로 상장폐지된 코스닥기업이 법원 판결에서 무죄로 밝혀지는 경우엔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손해액 5억원 이상인 배임사건의 경우 1심 무죄율이 15.6%로 전체 형사사건 1심 무죄율보다 7배가 넘었다. 즉 횡령·배임사건에 휘말려 상장폐지를 당했으나 법원 판결에서 무죄로 밝혀지게 되는 기업들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피해를 본 수많은 주주들이 거래소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래소의 역할에 딴죽을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잠재적 투자자(주주)들뿐만 아니라 기존의 주주들도 함께 보호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지금의 횡령·배임과 관련된 상장폐지실질심사제도는 기존 주주들의 자산을 전혀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모든 잘못을 소위 ‘나쁜 기업’에 잘못 투자한 주주들의 몫으로 전가하기엔 현행 제도가 너무나도 가혹해 보인다. 거래소의 구호대로 ‘클린 코스닥’을 지향하면서 한편으로 잠재적 투자자와 기존의 투자자들 모두를 보호할 새로운 대안이 절실하다.

강명재 한세대 경영학부 겸임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