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산지 ‘최후의 심판’ 파일 터뜨릴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영국 런던에서 체포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차 안에서 왼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가 7일 차를 탄 채 웨스트민스터 치안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미국의 외교전문을 공개한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39)가 영국 런던에서 체포됐다. 그는 성폭행 등의 혐의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수배를 받아왔다.

 런던 경찰국은 7일 “경찰서에 자진 출두한 어산지를 체포했다. 그는 8월에 스웨덴에서 협박과 강간 각각 한 건, 성추행 두 건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어산지는 체포 한 시간 뒤 런던 웨스트민스터 치안법원에 출석했다. 법원은 이날 그를 스웨덴에 인도할지 여부에 대한 심리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어산지의 신병 처리 결과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어산지가 어떤 대응에 나설지도 주목거리다. 그는 앞서 수사 당국의 포위망이 좁혀 들자 “유사시에 대비해 유포해 놓은 보험용 최후의 심판일(doomsday) 파일을 터뜨릴 수도 있다”고 위협한 바 있다.

 ◆체포 한 시간 만에 법원 출석=영국 웨스터민스터 치안법원은 어산지를 스웨덴으로 인도할지를 결정하는 심리에 착수할 예정이다.

 스웨덴 사법당국은 어산지의 성범죄 관련 혐의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지난달 중순 범유럽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영국 경찰은 영장의 미비점을 들어 새 영장을 요구했고 스웨덴 당국은 영장을 다시 발부해 6일 영국 경찰에 전달했다. 어산지 측은 그러나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을 뿐”이라며 자신에 대한 성폭행 혐의를 강력히 부인해 왔다.

 스웨덴 인도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보석 여부에 대한 결정이 먼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그의 혐의에 대한 법적 판단에 수개월이 걸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와 관련, “어산지의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보석 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의 변호인들은 어산지가 스웨덴으로 송환될 경우 곧이어 간첩죄 적용을 검토 중인 미국으로 압송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그의 변호사들은 “어산지의 체포는 정치적 탄압이며, 그의 스웨덴 인도를 막기 위해 법적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언론은 어산지가 15만 파운드(약 2억7000만원) 안팎으로 예상되는 보석금을 제공할 후견인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어산지가 미국으로 압송될 경우 실제 간첩죄 적용을 받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미 연방대법원은 1972년 워터케이트 사건 당시 “언론 보도를 막아 달라”는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했지만, 관련 자료를 언론에 제공한 국방부 직원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 때문에 어산지를 간첩죄로 처벌하는 것은 힘들 것”이란 견해도 있다. 그가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위키리크스의 기밀 폭로를 ‘언론 활동’으로 묘사해 왔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을 방문 중인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이날 어산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아주 좋은 뉴스”라고 반겼다.

 ◆‘정보 폭탄’ 터지나=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지난 5일 “어산지가 유사시에 대비한 보험용 폭탄 파일들을 전 세계에 유포했다”고 전했다. 이 파일들은 어산지가 유사시를 대비해 만든 것으로, 대단히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한 파일(insurance.aes256)의 경우 전체 용랑이 1.4기가바이트(GB)에 달하는데, 영국 석유회사 BP와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 등과 관련된 기록 등을 담고 있다고 선데이 타임스는 보도했다.

 문제의 파일들은 지난 7월 위키리크스 사이트에 올려져 이미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이 내려받았다. 다만 모든 파일에 256비트 체계의 강력한 암호가 걸려 있어,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어산지는 자신이 체포되거나 위키리크스 사이트가 완전 폐쇄될 경우 즉각 이 파일들의 암호를 공개해 ‘정보 폭탄’들을 터뜨리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문제의 파일들은 여태껏 공개된 파일들과 달리 정보원 신원 등 민감한 정보가 편집돼 있지 않아 공개될 땐 미국과 동맹국들의 안보에 큰 위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서울=김한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