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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주름살이 매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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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소리꾼 장사익(61·사진 가운데)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은 아름답다. 웃는 주름이어서다. “주름을 펴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우리 같은 사람은 봐 주는 사람들허고 똑같이 가야 혀. 관객은 나이 먹었는데 무대에 선 사람만 그대로 있으면 괴리감 느껴 못써”라며 웃었다.


소년도 요정도 늙는다. 금발의 로미오였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36)는 새 영화에서 주름이 불독처럼 늘어진 에드거 후버 전 FBI 정보국장으로 분했다. 원조 요정 이효리(31)는 섹시여신을 거쳐 밥솥·고추장 모델로 나섰다. 희로애락을 남보다 많이 표현해야 하는 직업 때문인지 30대인 이들의 얼굴엔 표정 주름이 선명하게 잡혀 있다. 마흔다섯 살에 첫 앨범을 내고 소리꾼으로 데뷔한 장사익(61) 선생은 아예 온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가면처럼 팽팽한 얼굴 때문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다른 스타들과 달라서 그는 아름답다. 화장품 회사마다 ‘안티에이징’을 이데올로기처럼 들이밀고 장사하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의 눈길을 끄는 진정 아름다운 노인은 세월을 거역하지 않은 흰 머리와 주름살이 편안하게 자리잡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를 ‘웰에이징’이라 부른다.

글=이진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중앙포토

심리나이·생체나이는 달력나이와 달라요

헬렌 미렌

웰에이징 전문가들은 나이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심리나이(정신연령)와 생체나이는 달력나이와 다르게 움직인다. 감수성과 호기심이 줄어들고 포기하는 일이 많아진다면 심리적으로 나이 들고 있다는 징후다. “세상사를 탐구하려는 노력이 끝나면 늙음과 죽음이 시작된다”는 법정 스님의 말은 웰에이징의 핵심을 찌른다.

남들은 현실에 주저앉았을 나이에 보장 없는 일에 뛰어든 장사익 선생은 노래인생으론 청년이다. 지금이야 하회탈처럼 웃는 얼굴이 그의 특징이지만, 예전엔 거의 웃음이 없었다고 한다. “늦게나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비로소 웃기 시작했고, 웃는 얼굴이 그대로 주름이 되면서 일도 더 잘 풀렸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생체나이는 몸을 계속 사용하면 젊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서울대 의과대학 박상철(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교수는 ‘늙으면 몸이 아파 움직일 수 없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통증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운동부족 때문에 온다는 거다. 맨손체조라도 꾸준히 하는 건 생체나이를 젊게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규칙적 생활, 정서적 자극, 단백질 식단…

최근 개봉한 영화 ‘레드’에 등장하는, 은퇴한 CIA 요원 프랭크(브루스 윌리스 분)는 시계가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뜬다. 이런 그의 태도에 웰에이징의 비밀이 있다.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습관은 ‘건강 100세인’들의 공통점이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밥 먹고 일하고 잠드는 건 웰에이징의 첫째 조건이다.

둘째는 사랑이나 우정 같은 심리적·감정적인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 프랭크는 은퇴연금을 관리해주는 젊은 여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위기가 닥치자 왕년의 동료들을 모아 극복한다. 많은 장수노인이 배우자·친구와 정서적으로 교류한다. 예술적 감동도 좋은 자극이 된다.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인슈타인은 “죽음이란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말년까지 감수성이 열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콩과 채소, 신선한 생선(일본식 숙회 제외) 등 이로운 단백질 식단을 즐기라고 박 교수는 추천했다.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 얼마 전 국회의원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까지 연루됐던 줄기세포 불법시술같이 단번에 회춘하려는 생각을 버릴 것. 박 교수는 “줄기세포는 암세포로 분화될 위험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보톡스를 맞아 특정 근육의 움직임이 둔화되면 그것을 대신하는 다른 근육이 움직여 엉뚱한 데 주름이 파인다는 점을 명심하자.

참고자료=『웰에이징』(생각의나무), 『건강하게 나이먹기』(문학사상사), 『대화』(샘터)

웰에이징 VS 안티에이징

늙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웰에이징은 웰빙·웰다잉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 안티에이징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안티에이징은 노화를 죽음을 향해 가는 불길한 과정으로 적대시한다. 하나 웰에이징은 노화를 긍정적인 생명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세포들은 죽어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변화한다.

안티에이징이 득세한 사회에선 노인을 무기력하고 쓸모 없는 존재로 몰아간다. 그들은 ‘아직 괜찮은’ 인간이란 걸 증명하려고 보톡스와 페이스 리프팅, 줄기세포에 기댄다. 하지만 웰에이징 사회는 ‘그 나이까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능력으로 여기고 노인들의 축적된 지혜를 활용한다. 개개인의 복지뿐 아니라 사회적 생산성의 측면에서도 웰에이징을 신중하게 검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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