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공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④ 서울 한양공고 이문행 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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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이에요. 늘 1등 하던 제자가 있었는데 말을 잘 못했어요. 그저 ‘네, 네’가 전부였어요. 대학에 들어가 발표 수업 때 말없이 서 있었대요. 그것도 30분 동안이나. 그러길 반복하더니 학점이 떨어져 군에 들어갔는데, 여기서도 말 못한다고 많이 혼났나봐요. 그 충격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답니다.” 그 제자 때문에 서울 한양공고 이문행(47) 교사는 “22년 교직을 헛되게 살았다”며 “교사가 필요한 학생은 누굴까. 학생에게 진짜 가르쳐야 할 건 뭘까” 고민했다.

글=박정식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자존감 세워주려 관상 봐주고 미래 인터뷰 해

이문행(오른쪽) 교사가 수학 수업 틈틈이 집중력을 다잡기 위해 학생들과 번갈아 어깨를 주무르며 게임을 하고 있다. [김진원 기자]

전문계고로 진학한 학생 중 상당수가 학업에 무관심하거나 눈을 감아버린다. 그러다 보니 고교 생활 3년이 가시밭길 같다. 등교한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다 보니, 학교는 취침시간이 된 수업시간을 묵인한다. 그런 분위기가 굳어진 지 오래다.

이 교사는 가르침을 잠시 뒤로 미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제자를 깨우는 것이다. 잠이 아니라 바로 마음을. 열등감에 사로잡혀 인생을 접으려는 제자를 깨울 방안을 궁리했다. 제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가정환경이나 그동안 살아온 삶이 상처투성이였다. “자존감을 세워주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먼저 관상학을 배웠다. 틈날 때마다 제자의 손금과 관상을 봐줬다. “재물운이 있네. 10년 뒤 돈을 많이 벌 것 같아.” “이 명줄 좀 봐라. 오~래 살겠네. 굵고 오래 사니까 한 자리 하겠는걸.” 칭찬일색이다. “정말이에요.” 반신반의하는 학생들에게 “대신 지금부터 ○○○를 해야 돼”라는 조건을 들이밀며 슬며시 학업을 부추겼다. 평소 같으면 소 귀에 경 읽기였을 말이다. 상담은 이렇게 이뤄진다.

그는 인터뷰도 한다. 제자의 30년 뒤를 얘기하며 묻는다. “세계적인 로봇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셨습니다.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요?” 제자가 머뭇거리자 다시 질문을 던진다. “학창 시절 수업 때 꿈을 많이 꿔서(잠을 많이 자서) 그런가요?” 제자가 웃는다. “목적지를 몰라 그런 거야. 그걸 알면 지금 뭘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제자의 어깨를 어루만져준다.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스스로 약속하기’라고 쓴 개인별 학습계획서를 만들게 한다. 시간대별로 나눠, 요일별로 해야 할 일을 적고 실천 여부를 표시하게 한다.

너와 난 아버지와 아들, 밤에도 문자로 소통

그의 수학 수업시간은 난장판이다. 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친구끼리 얘기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재밌어 한다. 지루한 수학시간인데 제자들이 깨어있으니 그도 즐겁다. 협력학습을 도입하고부터 그의 수업엔 자는 학생이 하나도 없다. 정승민(자동화로봇과 1년)군은 “자고 싶어도 시끄러워서”라고 웃으며 “그림·동영상·음악 등을 이용해 이해가 쉽다”고 말했다. “15분 공부하고 5분 쉬는 수업 진행 방식이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덧붙였다.

학생 4명이 칭찬장·기록장·이끔장·나눔장을 맡아 한 팀이 된다. 친구를 칭찬하고, 수업 내용을 기록하고, 잘하는 학생이 친구를 가르쳐주고, 학습자료를 챙기고 나눠준다. 열심히 수행하면 상장을 준다. 선행상·학습상·봉사상 등 갖가지다. 상 밑엔 ‘아버지 이문행이 아들에게’라고 쓰여 있다. 열심히 한 정도에 따라 팀별·개인별 행복통장에 칭찬도장을 찍어주며 선물도 준다.

그는 밤 10시가 넘어서도 제자와 휴대전화 문자를 나눈다. “아들, 하루 종일 표정이 일그러져 있던데 뭔 일 있어?” 교무실에 불러 물어봤으면 침묵했을 대답을 제자는 쉽게 털어놓는다. 그러고는 “걱정 마세요. 저 안 삐뚤어져요. 엄마와 화해하고 내일 즐겁게 갈게요.” 제자는 스스로 해결책까지 찾아 답한다.

수업은 3할, 7할은 제자에 다가서기

“수업보다는 소통이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야 아이들도 내게 미안함을 갖고 자기 행동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가 감성교육을 도입한 이유다. “교과지식보다 마음을 주고받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열려고 감성출석부를 만들었다. 이름 뒤엔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나 애칭, 장래 희망, 취미·특기, 교사나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적혀 있다. 이를 이용해 이름을 부르면 서먹한 사이가 한 걸음 가까워진다. 이렇게 신뢰를 쌓아 개인별 맞춤 학업·진로지도에 활용한다.

박계영(자동화로봇과 1년)군은 “선생님은 잘못을 했을 때 혼내지 않고 이유부터 물은 다음 필요한 도움을 주거나 조치를 해 준다”며 “이러다 보니 스스로 행동을 고치게 된다”고 말했다.

부모와 함께하는 수업도 마련했다. 부모가 교실 뒤에 서 있는 참관수업이 아니다. 그의 수업시간엔 부모가 자녀와 마주 앉아 함께 참여한다. 첫 수업엔 고전을 읽는다. 학업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명심보감·주자권학문을 배운다. 두 번째는 예체능시간. 함께 뛰고 즐기며 신체 접촉을 유도한다. 이어진 수학 수업엔 아들과 엄마가 서로의 키와 신체비율을 잰다. 황금비와 비율의 최적화에 대해 배우는 거지만, 평소 부모와의 사이가 무덤덤했던 학생들은 가슴 뭉클한 효심도 배운다. 마지막 수업은 진로검사다. 부모는 생계에 쫓겨 소홀했던 자녀의 특기적성을 알게 된다. 자녀는 오랜만에 자기 꿈을 이야기하며 무엇을 할지 부모와 얘기꽃을 피운다.

“알아서 잘하는 학생에게 교사가 필요할까요. 오히려 못하는 제자에게 더 매달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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