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습니다] 박정현 기자의 과천중학교 토론 연구 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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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면서 토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주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 탐구하는 자기주도학습 능력과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논리적·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의견을 조리있게 말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토론의 달인’이 되기란 쉽지 않다. 토론 시범학교로 토론수업의 모형을 연구 중인 과천중학교를 찾아가 방법을 알아봤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자기 주도적 토론수업 ‘활기차요’

과천중 3학년 6반 학생들이 과학 시간에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진위 여부에 대한 증거 자료를 제시하며 토론을 하고 있다. [최명헌 기자]

지난달 25일 경기도 과천중학교. 3학년 6반 학생들이 ‘아폴로 11호가 정말 달에 착륙했을까’를 주제로 열린 토론을 폈다. ‘착륙하지 않았다’고 한 학생들은 “1969년 7월 20일 ‘고요의 바다(달 표면에 있는 지형)’에 착륙했다지만 여러 음모론이 나오고 있다”며 “달 착륙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수빈양은 당시 촬영한 사진과 각종 자료 사진을 제시하며 “달에서의 광원은 하나뿐인데 아폴로와 우주인의 그림자 방향이 다르다. 지구보다 중력이 6분의 1 수준인데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착륙 장면을 촬영한 원본 비디오 테이프가 분실됐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문휘소군은 “광원은 하나지만 달의 경사가 달라 그림자가 다르고, 모래가 쌓여 발자국이 찍혔다”며 반박했다. 우주인들이 채취해 온 31kg의 월석을 자료로 제시했다. 토론이 한창인 이 시간은 과학 수업 시간이다. 이 학교는 영어·국어는 물론 수학·사회·과학 등 대부분 과목에 토론을 접목했다. 과학 수업을 담당한 안선민 교사는 “과학적인 정보를 받아들일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힘을 토론으로 키워준다”고 말했다. 토론 주제는 과학 수업 중에 선정했다. 학생들은 관련 교과 내용(달의 위상 변화를 관측해 달 운동과 비교)을 분석하고, 정보를 공유(아폴로 11호 달 착륙 정보와 음모론 등)한 후 자유토론(모둠별로 관련 정보를 토론)을 거쳐 이날 대표 토론을 했다.

학생들이 수업을 위해 준비한 자료는 백과사전 두께 정도로 많다. 박진솔양은 “일주일 정도 자료를 준비하고 분석해 친구들끼리 의견을 조율했다”고 말했다. 김주형군은 “수동적으로 수업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정보를 찾다 보니 수업에 활기가 있어 좋다”고 했다.
 
수학·과학 흥미 유발, 도덕 가치관 도움

과천중학교는 이런 방식의 프로젝트 토론수업을 한 학기에 1~2회 과목별로 진행한다. 짧으면 3차시, 주제에 따라 6차시로 진행하기도 한다. 수업 내용에 따라 간단히 진행되기도 한다. 예컨대 중3 국어 시간에 사랑을 주제로 한 ‘즐거운 편지’(황동규)라는 시를 배우면서 ‘사랑의 경험’에 대해 신호등 토론(각 의견에 해당하는 색깔을 들어 의사 표현을 함)을 해볼 수 있다. 임난영(국어) 교사는 “경험자의 수를 맞히는 게임 토론을 통해 수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 토론 수업을 주도하고 있는 권회정 교사는 “게임식 토론은 학생들이 들뜬 기분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참여해 성장기 학생들에게 적당한 수업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히 토론을 도덕 수업에 활용하면 청소년기에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중3 학생들은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후 토론 수업을 집중적으로 했다. 경기권의 경우 중 3 때 중간고사 성적까지 고교 입시에 반영돼 이후 수업 분위기가 해이해질 수 있어서다. 모연욱(3년)군은 “토론 주제가 재미있으면 더 적극적으로 정보 탐색을 하고 토론에 참여해 수업 집중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혜숙 교장은 “토론 수업으로 자기주도적인 태도를 배우고, 자기 의견을 표현함으로써 자긍심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 ‘주장+근거’ 두 문장 말하기부터

이 학교는 토론 수업의 모형을 개발하기 위해 매주 연구 모임을 해왔다. 얼마 전 중·고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동안 개발한 토론 수업을 공개하기도 했다. 권 교사는 “토론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문장부터 시작하면 쉽다”고 조언했다. ‘주장’을 하고, 그 ‘근거’를 말하는 것이다. 두 문장 말하기에 익숙해지면 사례나 부연 설명을 들어 ‘보충’하고, ‘자료’를 바탕으로 인용을 하면 더 설득력 있는 말하기가 된다.

예컨대 ‘조퇴를 하고 싶다(주장)+배가 아파서(근거)+아침부터 아팠다(보충)+양호실에서 약을 먹었다(자료)’는 식이다. 거기에‘반론’과 ‘결론’을 추가하면 토론의 기본이 완성되는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글쓰는 연습을 하면 논술도 어렵지 않다. 권 교사는“토론도 방법만 알면 쉽다. 토론은 소통을 위한 것이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입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토론 수업, 따라해 보세요                ※도움말= 과천중 교사진

·번개 토론 아무 때나 ‘번개’처럼 질문하고 답한다는 의미. 대답은 1분을 넘지 않게 가능한 한 문장, 한 단어로 한다.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지금 기분은?”이라고 묻는다. 학습 전과 후 내용의 이해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모서리 토론 공간마다 네 개의 모서리가 있는 데서 착안한 토론 방식. 하나의 주제에 대해 네 가지의 다른 경우를 주고, 자기 생각과 가장 가까운 한 가지를 선택하게 한다. 입장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면 더욱 명확한 근거와 논거를 만들기 쉽다. 각 모서리는 A·B·C·D나 색깔로 정한다.

·신호등 토론 빨강(반대)·초록(찬성)·노랑(모름) 카드를 한 장씩 나눠 준 뒤 질문을 하면 카드 색깔로 의견을 밝힌다. 말이 없는 학생들의 표현을 유도할 때 좋다.

·두 마음 토론(천사·악마 게임) 찬반 토론(정답이 없고 찬반이 명확히 나뉘는 주제)에 역할 게임을 접목한 방법으로 두 사람이 천사와 악마 역을 맡아 설득한다. 정답은 없지만 다양한 근거를 통해 자기 주장을 말한다.

·브레인 라이팅 ‘게시판 세미나’라고도 불린다. 질문에 대한 의견을 종이에 적어 게시판에 붙인다. 소극적인 학생들의 의견까지 수렴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 발굴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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