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퍼지는 노원구 ‘원어민 영어 화상학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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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에 거주하는 한 학생이 원어민 영어 화상 학습 시스템을 통해 영어로 대화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필리핀에 있는 원어민 영어 선생님과 학생 4명이 인터넷을 통해 함께 공부할 수 있게 만들었다. [노원구 제공]

초등학교 6학년 세연이(12·서울 노원구 하계동)는 요즘 컴퓨터로 필리핀 현지에 있는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로 이야기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서울 노원구청이 제공하는 ‘원어민 영어 화상 학습 시스템’을 통해서다. 일주일에 3번, 컴퓨터 화면을 통해 단짝 친구 세 명과 함께 영어 선생님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수업시간(30분)이 훌쩍 지나간다. 세연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영어학원에 다녔지만, 쉬운 영어 단어조차 말하기 힘들었다. 학원에서는 문법 위주로 공부하고, 10명이 넘는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다 보니 말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세연이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니 부담도 덜하고, 원어민 선생님이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물어 공부가 아니라 수다 떠는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2008년 노원구가 만든 ‘원어민 영어 화상 학습 시스템’이 회원 수 1만20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원어민 교사 한명당 학생 4명이 인터넷을 통해 화상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이다. 노원구는 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16억8000만원을 썼다. “영어 말하기 실력이 쑥쑥 는다”는 입소문에 전국 자치단체에서 영어 화상 학습 시스템을 공유하자는 문의도 줄을 잇고 있다. 노원구는 현재 전남 보성군, 경기도 화성시 등 4곳의 지자체와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오세길 노원구 교육지원과장은 “양질의 영어학습 프로그램을 전국에 개방해 운영한다는 방침에 따라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 없이 무상으로 노원구의 화상 서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어 화상 학습 시스템의 인기 비결은 ‘싼 수강료와 높은 질’이다. 일주일에 2~3번, 30~40분씩 진행되는 영어 수업의 수강료는 월 5000원이다. 노원구가 수강생 한 명당 3만1000원을 보조하고 있다. 노원구에 사는 초등학교 3~중학교 3학년 학생이면 누구든지 신청할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정 학생은 교재비·수강료가 없다. 노원구는 학생들의 수강료를 보조하기 위해 연간 10억원의 예산을 쓰고 있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강사 관리도 철저히 한다. 노원구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 구 전용 영어화상학습센터를 만들어 44명의 원어민 강사를 두고 있다. 모두 영어교육, 교육 전공의 4년제 대학 졸업자다. YBM 시사영어사의 필리핀 법인이 위탁운영하고 있지만, 구청 직원들이 연 2회 현지 실사를 나가 강사를 관리한다. 국내에 ‘화상학습콜센터’를 만들어 6명의 학습 매니저가 수강생들을 상대로 학습 상담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강사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니터링한다. 하계동에 사는 학부모 임지영(41)씨는 “아이가 수업을 빼 먹으면 학습 매니저가 바로 집으로 전화해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노원구는 올해부터 성적 우수자를 뽑아 필리핀 현지로 해외연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19명의 학생이 6박7일 일정으로 필리핀 마닐라의 영어화상학습센터를 방문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정인영(12)양은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던 선생님을 직접 만나 준비한 선물도 전달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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