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관세철폐 시한 ‘2014 → 2016년’ 한국 요구 관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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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일부 양보하고, 양돈업과 의약업계는 이득을 봤다.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 내용은 이렇게 갈무리된다.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큰 부분(자동차)에서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고, 작은 부분(양돈과 의약품)에서 이득을 취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특히 자동차는 핵심 쟁점이던 승용차 관세 조항부터 환경·안전기준, 세이프가드 도입까지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미국이 기존 요구 가운데 상당 부분 철회했다”(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지만, 협의 내용을 보면 미국의 요구가 관철된 게 더 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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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돈업과 의약업계는 이득=한국은 ▶돼지고기 관세 철폐기간 연장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미국 내 지사 파견 근로자에 대한 비자(L-1) 유효기간 연장 등의 성과를 거뒀다. 애초 FTA 발효와 관계없이 2014년 1월 1일부터 관세를 철폐하도록 돼 있던 돼지고기(냉동 목살과 갈빗살)에 대해선 2016년 1월 1일부로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그동안 국내 양돈농가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했던 분야인데 당분간 한숨 돌리게 됐다. 이번 추가협상에 따라 현행 25%인 돼지고기의 관세를 2012년 16%로 낮춘 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4%포인트씩 내려 관세를 없앤다. 이 품목은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액 가운데 67%(1억7000만 달러)를 차지한다. 농림수산식품부는 현재 ㎏당 3810원인 냉동 목살 도매가격이 관세를 없애면 ㎏당 3115원으로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두 나라는 또 복제의약품(제네릭) 시판 허가와 관련한 허가·특허 연계 의무 이행을 3년간 미루기로 합의했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는 복제약 제조업체가 복제약의 생산 허가를 허가권자에게 요청하면 허가권자는 그 내용을 특허권자에게 통보하는 제도다. 이때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특허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허가권자는 복제약 생산을 허용할 수 없다. 주로 복제약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업계 특성상 2007년 협정 당시 가장 피해가 큰 분야로 꼽혀 왔다. 당시엔 협정 발효 후 18개월 동안 분쟁 해결 절차에 회부할 수 없도록 했으나 이번 합의를 통해 제도 도입 자체를 3년간 늦췄다.

 한국 업체의 미국 내 지사 파견 근로자에 대한 비자(L-1) 유효기간도 지사를 새로 만들 경우 현행 1년에서 5년으로, 기존 지사 근무 때는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선 “논의된 바 없다”(김종훈 본부장)고 재확인했다.

자동차 관세 ‘즉시 철폐 → 4년 뒤 폐지’ 미국 요구 수용

뭘 양보했나

이번 추가협상에서 관세 철폐 기간을 연장하기로 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모든 승용차를 대상으로 두 나라는 4년간 관세를 유지하게 된다. 2007년 6월의 합의에서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 중 3000cc 이하에 대해서는 관세를 즉시 철폐하고 3000cc를 초과하면 관세를 2년간 균등 철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재협상으로 FTA가 발효된 후부터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2.5%)를 4년간 유지한 뒤 철폐하기로 했다.

 애초의 합의문에서 한국은 미국산 모든 승용차에 대한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했다. 이번 재협상에 따라 한국은 발효일에 관세를 현행의 절반(4%)으로 낮춘 뒤 4년간 유지한 다음 철폐한다. 2012년 1월 1일 협정이 발효된다고 전제하면 2016년 1월 1일부터 관세가 없어지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5일 브리핑에서 “미국은 우리 측 관세 즉시 철폐는 그대로 두고 미국 측 관세를 8~10년 연장할 것을 요구해왔다”며 “상호적용 원칙을 전제로 관세 양허 일부 수정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애초 두 나라가 FTA 발효 후 9년간 균등 철폐하기로 했던 전기자동차 분야의 경우 한국은 발효일에 관세를 절반(4%)으로 낮추고, 두 나라 모두 4년간 균등 철폐하기로 했다. 미국은 GM의 ‘볼트’ 등 전기차 상용화를 앞두고 있어 전기차 수출을 늘리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2007년 최초 협정 당시 한국 정부는 전기차를 ‘민감 품목’으로 분류했다. 화물차의 경우엔 미국의 보호가 강해졌다. 미국의 화물자동차 관세(25%)는 애초 9년간 균등 철폐에서, 철폐 기간은 유지하되 발효 7년 경과 후부터 균등 관세 철폐(12.5%씩 2년간 인하)하기로 조정됐다. 국내에 들어오는 미국산 화물차 관세(10%)는 즉시 철폐된다.

 자동차 부문에서 세이프가드를 도입하는 것도 주요 특징이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품목의 관세 인하나 철폐로 수입이 급증해 당사국의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수입국 정부가 FTA로 인하된 관세를 원래 수준으로 돌리는 걸 뜻한다. 2007년 당시엔 없던 조항이다. 관세 철폐 기간 이후 10년간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할 수 있게 했다. 세이프가드 발동 기간은 처음에는 2년이고 추가로 2년 연장할 수 있어 최대 4년이다.

 자동차 안전 기준과 환경·연비 기준도 수정됐다. 안전기준의 경우 한국으로 수출되는 미국산 자동차의 자가인증 허용 범위를 한국 내 연간 판매량이 6500대 이하인 업체에서 한국 내 연간 판매 2만5000대 이하인 업체로 확대했다. 미국 안전기준을 준수하면 한국 안전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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