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훈의 마켓뷰] D램 값 비틀거려도 ‘IT의 봄날’은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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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예기치 못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유럽 재정위기로 요동치던 증시가 안정을 되찾고 있다. 한풀 꺾였던 연말 주식시장 랠리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왠지 불안하다는 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증시의 변동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투자자들의 느낌만큼 장이 요동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코스피지수의 조정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번 조정장 중 저점이었던 지난달 29일의 1880.58은 코스피지수 연중 최고치인 1976.46보다 4.9% 빠진 정도다. 원-달러 환율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 역시 커다란 동요는 없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조정이 투자자들에게 강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기업들의 이익이 쭉쭉 늘어나는 것 같은 뚜렷한 호재가 없다는 점이 빚어낸 상황으로 보인다.

  주요국의 경제지표 호조 소식을 바탕으로 12월 증시는 일단 상승 출발했다. 앞으로는 어떨까.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게 바로 정보기술(IT) 종목이다. 유가증권 시가총액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IT는 코스피지수 2000 돌파 여부를 좌우하는 최대 변수다.

 최근 IT경기 관련 뉴스를 보면 다소 혼란스럽다. D램의 지난달 16~30일(하반월) 고정거래선 가격이 개당 1.22달러로 1~15일(상반월) 대비 13.5% 하락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때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당분간 피어오르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과연 그럴까. IT의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들은 반대로 회복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가 그렇다. 11월치가 56.6으로 14개월 연속해 ‘업황 호조’(50 이상)를 나타냈다. 미국과 함께 세계 소비를 주도하는 중국의 11월 제조업구매관리지수(PMI) 역시 55.2로 당국의 긴축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예상치인 54.8을 웃돌았다. 주요 IT제품 수요처인 제조업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쪽에서도 희소식이 들렸다. 추수감사절 주말이자 미국 최대 쇼핑 시즌인 지난달 25~27일, 미국에서 이뤄진 쇼핑 규모는 450억 달러로 전년 대비 9.2% 증가하면서 2004년 조사 이래 최대 규모를 보였다. 특히 ‘IT제품을 샀다’는 소비자들이 의류, 도서·CD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이뿐이 아니다. 내년 1분기에는 인텔이 차세대 CPU인 ‘샌디 브리지(Sandy Bridge)’를 출시할 예정이다. 또 반도체 회사인 일본 엘피다와 대만 파워칩이 최근 D램 감산에 들어간 효과도 내년 초에는 본격적으로 가격에 반영될 전망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요즘 D램 가격 하락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좋을 때 후일을 걱정하듯이 안 좋을 때는 좋아질 때를 준비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주가 저점은 비관론의 정점인 동시에 낙관론의 시작이다. IT 경기의 봄날은 멀지 않았다.

한화증권 리서치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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