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력 여성비율 턱없이 낮아

중앙일보

입력

"부임 초기 다른 신임 교수들과 달리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이 곳 저 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잇달았다.단지 공대의 유일한 여자 교수라는 점 때문이었다."

서울대 공대 전화숙(컴퓨터공학과)
교수의 말이다.올 3월 이 학교에 부임한 전교수는 2백50여 명의 공대 교수 가운데 말 그대로 홍일점이다.

여성들이 과학을 기피하는가,아니면 과학이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은가.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인가.남녀 성비의 불균형이 특히 심한 과학기술계에서 이 문제가 최근 화제와 논쟁의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세계 유명 과학저널 '네이처'는 최근'과학계에서 여성차별'이라는 주제로 인터넷 논쟁을 실시하고 있다.국내에서도 최근 이 문제를 다룬 '남성의 과학을 넘어서'라는 책이 나와 잔잔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여성은 과학계에서 열세다.이는 숫자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과기부 집계에 따르면 정부 출연연구기관 내 여성 연구원의 숫자는 1백 명을 약간 넘는 수준.이는 전체 연구원의 5%에도 못미치는 수치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회 오세화회장(한국화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은"서구에서도 여성 과학자의 비율은 낮지만 우리 나라는 더욱 낮은 실정"이라고 말한다.한 예로 미국 MIT의 경우 과학부의 여성 교수(15명)
는 전체교수(2백9명)
가운데 8%로 우리보다 높다.

과학기술자 가운데 여성비율이 낮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적자원의 효율배분이 안된다는 뜻.한 여성과학자는"우수한 여성 과학자에게 돌아가야 할 자리를 능력이 떨어지는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면 국가경쟁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이런 지적은 과학에 대한 남녀의 천부적 능력이 동등하는 가정 아래서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차별의 벽은 높기만 하다.생명공학연구소 유향숙박사는"과거에는 과학을 전공하는 여성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었다.그러나 최근 여성 대학원생이나 박사들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과학자로 취업이 드문 것은 진입장벽 때문"이라고 분석했다.비슷한 조건이라면 연구소나 대학 모두 남성 과학자를 좋아한다는 것.이런 진입장벽은 여성에 불리한 우리 사회의 구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서울대 전화숙교수는 직무와 가사를 병행하는 여자가 남성과 경쟁상대가 되려면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실제 여성 과학자가 남성과 동등한 평가를 받기 위해선 2배 가량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차별 외에 천부적인 능력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한 중견교수는"석·박사 학생들을 지도해본 결과 논리적인 사고는 대체로 남학생들이 앞섰다"며"물리·수학 같은 논리적 사고력이 특히 중요한 과목에서는 남성들이 유리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세계적인 추세는 여성 과학 인력을 능력을 한껏 활용해야한다는 것.독일에서는 얼마전 수십억을 들여 여성과학인력활용 프로그램을 발주하는 등 국가가 나서고 있다.미국에서도 여성 과학자 할당 채용 등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최근 역차별 제기 등으로 다소 주춤한 상태다.

김창엽 기자<atm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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