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역사의 긍정과 자기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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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오후 베이징(北京)
에는 무섭게 장대비가 내렸다. 이곳에서 오래 사업을 해온 한 동포의 말로는 베이징에 이런 폭우가 쏟아진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요 일찍이 구경한 일이 없다고 한다.

이러다간 천안문(天安門)
광장의 행사가 엉망이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다음날 10월 1일의 베이징 하늘은 씻은 듯이 파랗게 개었다. 확인되지 않은 얘기지만 어제 내린 폭우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50주년'의 경축행사에 바로 이런 날씨를 맞추기 위한 '인공강우'였다는 것이다.

따져보니 90년 이후 베이징에는 이번이 다섯번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수백만대의 자전거가 물결치고 있는 틈새에 이따금 자동차가 눈에 띄었으나 그때도 석탄 매연으로 베이징 하늘은 흐려 있었다. 97년 방문시엔 이미 늘어난 자동차가 자전거를 대체해 공항 가는 길은 정체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석탄연기와 자동차 배기가스로 베이징 하늘은 더욱 오염되고 있었다.

이번에 와보니 자동차량 증가는 가속화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밤의 '인공강우'로 베이징에서 이처럼 활짝 갠 하늘을 볼 줄이야. 잠깐 들른 나그네만이 아니라 이곳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날 처음으로 먼 산들의 능선을 본다고 야단들이었다. 황산도 보았다던가….

50만명(!)
의 군인과 학생·시민들이 10시에 시작되는 행사를 위해 오전 4시부터 집결해 구름처럼 대기하고 있는 천안문 앞에 임시로 마련한 '관례대(觀禮台)
'에 자리 잡는다. 천안문 중앙 노대 밑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의 영원한 초상이 언제나처럼 버티고 있다.

이날 따라 새로 눈에 띄는 것은 광장 한복판에 '중화인민공화국 50주년을 경축한다''덩샤오핑(鄧小平)
이론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새로운 세기로!'라는 두개의 빨간 대형 플래카드 사이로 크게 부상한 중산(中山)
쑨원(孫文·1866∼1925)
의 초상.

중국국민당(공산당 아님)
의 지도자이자 중국혁명의 선도자였던 쑨원의 초상화다. 붉은 베이징에서 '중화민국'의 초대 임시총통 쑨원의 대형 초상화를 본다는 것은 공기오염이 심한 베이징에서 황산의 원경을 본다는 것 만큼이나 희한한 일이다. 인공의 강우로 공간적 시야만이 아니라 역사적 시야도 확대된 것일까.

냉소적인 '프랑스 2'TV방송이 '현대중국의 3대(代)
황제'라 일컬은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과연 건국 50주년 행사의 제사장(祭司長)
으로서 특히 중공정권의 역사적 정통성을 되도록 장기적 전망속에서 부각시키려 하는 연출이 돋보였다.

이날 유일한 축사로 그가 행한 '강화(講話)
'도 단순히 중화인민공화국 50년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고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민족독립과 인민해방'을 위한 1백년의 투쟁, 20세기 중반에서 21세기 중반까지 '사회주의 현대화'의 실현을 위한 1백년의 진력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가 연설한 천안문 노대는 바로 50년 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창건을 선포한 자리다. 이날 배석한 모든 당간부들이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가운데 오직 장쩌민만은 서방에서 '마오 룩(마오쩌둥 복장)
이라 일컫는,실인즉 '중산복(쑨원 복장)
'을 입고 있었다.

15년만에 부활한 천안문 광장의 군사퍼레이드를 사열(査閱)
하기 위해 장쩌민이 탄 자동차도 1984년 덩샤오핑이 전세계를 향해 개방·개혁노선을 선포하고 사열할 때 탔던 바로 그 낡은 리무진이었다.

강조되고 있는 것은 연속성이요, 승계성이요, 정통성이오. 외부세계에서는 '마오(毛)
에서 모차르트로'또는 '마오에서 마켓(시장경제)
'으로 변했다고 비아냥대고 있지만 중국혁명은 쑨원에서 마오로, 마오에서 덩샤오핑으로 일환되고 있다는 지속성은 강조하려는 것이 장쩌민이 연출한 대축제의 요지인 듯 하다.

한 세대전만 해도 20세기의 유라시아 대륙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인물로 레닌과 마오를 드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레닌의 러시아에서는 레닌의 동지들을 스탈린이 부정하고, 스탈린을 흐루시초프가 부정하고, 흐루시초프를 브레즈네프가 부정하고, 브레즈네프를 고르바초프가 부정하더니 옐친은 레닌에서 고르바초프까지 모두를 부정해버리고 말았다.

지구위의 가장 큰 판도에서 또다른 혁명을 일으킨 중국에서 20세기의 역사가 21세기로 승계되려 하고 있는데 반해 러시아에서는 피투성이의 20세기 역사가 송두리째 오유(烏有)
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양김(兩金)
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현대사는 어떻게 될 것인지….(베이징에서)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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