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DNA’ 닮은꼴 구단 변신 또 변신, 최고의 팀 일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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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14면

5일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공격 선봉에 나설 FC서울의 이승렬(왼쪽)과 제주유나이티드의 배기종.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오랜만에 클래식 매치가 성사됐다. 5일 쏘나타 2010 K-리그 챔피언십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만나는 FC 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는 올드 축구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프로축구 초창기 멤버들이다. 1일 제주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양 팀은 2-2로 비겼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차전 승자가 올 시즌 프로축구 챔피언이 된다.

K-리그 챔피언 결정전서 만난 FC서울- 제주 유나이티드

제주는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 리그 원년 멤버다. 기업이 운영하는 최초의 프로팀이었다. 따라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팀은 제주다. 82년 12월 창단한 유공 코끼리 축구단이 모태였다. FC 서울은 84년 프로리그에 합류했다. 럭키금성 황소 프로축구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역사가 실력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제주는 딱 한 번(89년), 그리고 서울도 겨우 두 번(90년, 2000년) 우승했다.
 
한국 프로축구의 프런티어
두 팀은 오랜 역사만큼 곡절이 많다. 한 번도 하기 어려운 연고지 이전을 세 번이나 했다. 83년 제주의 연고지는 인천과 경기도였다. FC 서울은 원래 충청도를 기반으로 했다. 그러던 두 팀은 90년 서울에 입성했다. 당시 일화(현재 성남 일화)를 포함해 3개 팀이 서울에 포진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흥행몰이를 하겠다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복안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96년 제주는 부천(부천 SK)으로, 그리고 서울은 안양(안양 LG)으로 흩어졌다. 두 팀은 다시 한번 용단을 내린다. 2004년 안양 LG는 서울로 재입성해 FC 서울이 됐고, 2006년 부천 SK는 제주로 내려가 제주 유나이티드로 변신했다. 시장의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모기업의 ‘개척정신’이 축구팀에서 발현됐다.

FC 서울은 수도 서울이 지닌 시장성에 승부를 걸었다. 한웅수 FC 서울 단장은 “서울에 뿌리내리기 위해 과감히 기업 명칭을 뺐다. 7년간의 노력이 올해부터 결실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FC서울 올 관중 수 50만 새 역사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서울은 올 시즌 관중 48만9638명을 동원했다. 5일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50만 관중 돌파가 기대된다. 정규리그 14경기 평균 관중이 3만 명을 넘었다. K-리그 한 구단 50만 관중은 프로축구 28년 역사의 새 이정표다.

서울은 차분히 차세대 스타를 만들어왔다. 2005년 ‘천재’로 불린 박주영(모나코)을 영입했다. 수원 등 다른 팀과 영입 경쟁이 치열했지만 과감한 투자로 박주영 쟁탈전의 승자가 됐다. 박주영을 중심으로 한 스타 마케팅은 기성용(셀틱)·이청용(볼턴)의 가세로 탄력을 받았다.
정종수 FC 서울 사장은 GS그룹에서 40년 근무한 ‘영업통’이다. 각 구단이 지출을 줄일 때 정 사장은 마케팅 담당 직원 채용을 대폭 늘렸다. 올 시즌 50만 관중 돌파는 “K-리그도 시장성은 무한하다. 평균 5만 관중 돌파가 목표다”를 외친 정 사장의 ‘개척자 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

1일 제주에서 열린 1차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2-2 동점골을 터뜨린 김치우(FC서울·왼쪽에서 셋째)가 동료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제주=정시종 기자

제주 유나이티드 “축구는 재미있게”
2004년 부천 SK는 팀 해체 위기를 맞았다. 구단 측은 중국 기업에 구단 매각 협상을 벌였다. 구단 매각에 실패하자 시민구단 형태로 부천시청에 넘길 방안도 강구됐다. 이마저도 성사되지 않자 축구팀은 SK그룹 내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SK는 2006년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다. 변명기 제주 유나이티드 사장은 “국내 어느 스포츠 구단도 연고를 두지 않은 제주로 온 것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였다. 가장 오래된 프로팀이란 자부심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밝혔다.

제주는 올해 정규리그 2위에 올랐다. 4년의 시행착오가 헛되지 않았다. 올 시즌 박경훈 감독을 영입한 변 사장은 ‘성적 우선’을 기치로 내걸었다. 변 사장은 “제주 정서상 아직 우리 팀은 외부인 이미지가 강하다. 지역 밀착 활동을 벌이는 동시에 재미있는 경기와 좋은 성적으로 지역 팬들에게 다가가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지역적 폐쇄성이 강한 제주 축구팬들도 ‘우리 지역 선수’보다는 재미있고 이기는 축구를 선호했다. 중량급 선수를 꾸준히 영입한 제주는 적극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올해 수준급 라인업을 구축했다. FC 서울 출신 베테랑 공격수 김은중이 제주에서 재기에 성공했고, 미드필더 구자철과 수비수 홍정호는 대표팀의 차세대 기대주로 성장했다.

K-리그 개척자인 두 팀의 운명은 5일 챔프전 2차전으로 갈린다. FC 서울은 5만 홈 관중을 등에 업고 제주의 기를 죽일 태세다. 서울은 올 시즌 홈 14경기에서 13승 1패를 기록했다. K-리그 사상 최고의 홈 승률(92.9%)이다. 경기당 3만 명이 넘는 관중이 홈팀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준 덕이다.

홈경기 불패 서울, 바람 타는 제주
서울의 공격수 이승렬은 “1차전에서 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승”이라고 자신했다. 2차전 홈경기는 자신 있다는 이야기다. 서울은 1차전 제주 원정경기에서 2-2로 비겼다.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성공시켜 분위기상 서울이 앞선다. 벤치 멤버까지 탄탄한 넓은 선수층이 제주를 압도한다.

제주는 1차전 다 이긴 경기를 놓쳤다. 게다가 팀 전력의 핵심 구자철과 홍정호가 아시안게임에서 체력을 소진해 100%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하지만 올 시즌 제주는 K-리그에서 가장 의외의 팀이었다. 지난해 14위가 2위로 올라섰다. 창의적인 축구를 하는 데다 날카로운 공격수 배기종이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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