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View] 성석제의 인생 도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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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젠 맥주

독일 베를린에서 삼 개월을 체류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동네 곳곳에 편안하고 오래된 친구 같은 식당, 카페가 많다는 것이었다. 고향에서 열다섯 살까지 살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나는 언제나 도시 변두리, 새로 만들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 인공적인 구획과 삭막한 건축물 더미 속에 살아 왔다. 그나마 동네에 좀 정이 가고 마음을 쉴 수 있을 만한 음식점이나 술집이 있나 싶으면 얼마 못 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 자연스러움, 인간적인 냄새는 규모의 경제, 치열한 경쟁에서 배겨나지를 못했다.

 베를린에 도착한 뒤 바로 그런 음식점이 집 주변에만 수십 군데 있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날을 잡아 시찰에 나섰다. 좋은 음식점이 천만 개가 있다 한들 가서 앉아서 먹고 마셔보지 않으면 뭘 하나. 그런데 막상 음식점 앞에 가서 보면 이미 그 음식점 나름으로 강력한 색깔과 유대가 있다는 게 느껴지기 십상이었다. 어떤 곳은 백발인 노인이 많았고 어떤 곳은 지인들끼리 열변을 토하는 분위기였으며 어떤 곳은 당구대와 다트판, 주크박스가 즐비한 가운데 그들끼리의 게임에 열중하고 있어서 혼자 몸으로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았다. 십여 군데를 망설이면서 지나치다가 발견한 곳이 이탈리아 음식을 전문으로 한다는 간판이 내걸린 프랜차이즈 음식점이었다.

 왕복 2차로가 교차하는 도로 옆에 쥐똥나무 울타리가 둘러진 트인 공간에 탁자와 의자가 열 개쯤 놓여 있었고 안쪽에는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TV, 여덟 개의 탁자가 있었다. 지나가는 오토바이족이 1유로짜리 피자 한 조각을 선 채로 주문해서 먹고 가기도 하고 매일 저녁 같은 시각에 오는 노부인이 봉골레 파스타를 시켜 먹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손님은 실내보다는 밖에서 먹고 마시고 담소를 나누기를 좋아했다.

 식당 주인은 물론 이탈리아 출신이었다. 종업원 가운데 가장 젊고 잘 생긴 청년은 팔레스타인, 목소리 큰 청년은 이라크, 키 크고 수줍은 쌍둥이 친구들은 알바니아에서 왔다고 했다.

 거기에서 터줏대감을 자처하던 사람은 스스로를 ‘레옹’이라고 소개했다. 아닌 게 아니라 모자와 검은 선글라스, 수염이 영화 ‘레옹’에 나오는 배우 장 르노를 닮긴 했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의 대기업 이름을 몇 군데 언급하면서 그 회사들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아주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난데없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의 맨 앞부분 한 소절 ‘Wise man says, only fools rush in’을 중후한 저음으로 흥얼거렸다.

 “그럼 당신은 프랑스인인가요?”

 내 물음에 그는 자신은 아마추어 가수라고 대답했다. 그건 국적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을 겨를도 주지 않고 그는 또 도니제티의 오페라 아리아 ‘사랑의 묘약’ 가운데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의 맨 앞 소절을 불러젖혔다. 한두 소절만 부르고 난 뒤에 다른 데로 화제를 돌리는 게 버릇이었다. 그런 식으로 그날 저녁 그가 부른 노래만 해도 수십 곡이 넘었다.

 그 식당에서도 물론 생맥주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음식을 지지고 볶고 끓이는 주방에 맥주통이 있는 까닭에 그다지 신선할 것 같지 않았다. 레옹은 내게 맥주 맛있게 마시는 법을 가르쳐 주겠노라면서 계산대에 가서 “글라스!”라고 외친 뒤 잔을 받아서는 냉장고에서 병맥주를 꺼내 왔다. 흔한 필스너 비어인 생맥주와 달리 밀과 보리를 섞어 발효시킨 바이젠 맥주(Weizenbier)로 거품이 많고 향이 풍부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거기다 맥주를 병입할 때 여과를 한, 여과를 하지 않아 효모와 부유물질 때문에 뿌연 색깔을 한 헤페 바이젠(Hefe-Weizen)과 대조되는 크리스탈 바이젠(Kristall-Weizen)이었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병뚜껑을 딴 그는 잔을 옆으로 기울여서 천천히 맥주를 따랐다. 그 뒤에 거품을 따를 때는 잔을 차츰 세워서 거품이 맥주 위에 충분히 덮이도록 하는 게 그의 방법이었다.

 내가 단 한 번에 그 모든 과정을 재연하자 그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또한 취한 내가 독일의 민요와 가곡부터 영국, 미국, 이탈리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다른 손님들과 함께 턱이 빠지도록 놀랐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노래 중 상당수가 구미의 민요, 가곡이었으니까. 가령 ‘반짝반짝 작은 별’ ‘솔솔 부는 봄바람’ ‘노래는 즐겁다’ ‘들장미’ ‘보리수’ 같은 노래에 성가·찬송가까지 합치면 최소 수십 곡은 될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노래 정말 좋아하고 잘해요. 나는 평균 이하예요.”

 잘난 척한 덕분에 결국 계산을 할 때는 내가 레옹의 술값을 뒤집어썼다. 병맥주 두 병 정도. 그날 밤 그 음식점에 있던 사람들은 바이젠 맥주와 노래라는 언어로 잠시 국경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가장 큰 공로자는 물론 레옹, 베를린의 오래된 동네 아마추어 마이스터징거(Meistersinger)였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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