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기자의 오토살롱] ‘F1과 찰떡궁합’ 페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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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지난달 ‘2010 포뮬러1(F1)’이 9개월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19번의 경주가 열린 올해 한국은 처음으로 개최국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마지막 경주인 중동의 아부다비 경주는 빅 이벤트였다. 직전까지 1위를 달렸던 페라리팀은 소심한 작전 끝에 다 잡았던 드라이버 챔피언을 경쟁팀(레드불)에 헌납했다.

영국 축구팬과 함께 유럽의 양대 극성팬으로 널리 알려진 페라리 팬들은 경기 직후 감독을 위협하며 소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탈리아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페라리는 F1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업체다. 1950년 F1 첫 대회부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 유일한 메이커다. 52년 처음 챔피언에 올랐고, 지금까지 가장 많은 215회 우승을 했다. 레이싱의 황제 미하엘 슈마허도 페라리팀에서 명성을 쌓았다.

 페라리는 전 세계 어디서나 ‘부의 상징’으로 통한다. 차 한 대 가격이 수억원씩 해서가 아니다. 스페셜 또는 한정판매라는 독특한 마케팅 기법을 쓰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돈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지 살 수 있는 대중차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연간 생산대수도 많아야 6000대 정도다. 모든 차량에는 생산 날짜와 순번, 고객 이름을 새겨준다. 자동차가 아니라 소장가치가 있는 보석에 가깝다.

통상 페라리 고객의 예금 잔고에는 500만 달러(약 60억원) 이상이 들어있다고 전해진다. 페라리 오너들은 보통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운전을 한다. 5∼10%는 1년에 한 번 정도 시동을 걸 뿐 컬렉션을 즐긴다.

 페라리는 빼어난 디자인으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전통을 담아낸 디자인 전문업체 ‘피닌파리나’와의 찰떡궁합 덕분이다. 이 회사는 국산차 대우 레조, 현대 라비타를 디자인해 국내에서도 친숙하다.

페라리 로고에는 노란색 방패 속에 앞발을 쳐든 검은 말이 그려져 있다. 노란 방패는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북부 마라넬로시를 상징한다. 검은 말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로 영웅이 된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자신의 전투기에 그렸던 마스코트다. 30년대 전설의 레이서였던 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에게 하사했다.

 페라리는 스포츠카와 한정판매를 고집하다 두 번 부도가 난 끝에 69년 피아트에 합병됐다. 페라리 판매대수는 때로는 국력을 가늠하는 지표로도 쓰인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페라리의 주요 시장은 서유럽·북미·일본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지난해 미국 다음가는 시장이 됐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G2’로 올라선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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