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후보들 젊은층 붙들기 온라인유세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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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시걸은 스티브 포브스의 아이오와州 득표 활동을 돕기 위해 ‘세몰이 효과’를 내고 싶었다. 목표는 간단했다. 아이오와州 유권자들을 공화당 대선 후보 모의투표가 실시되는 에임스로 가도록 독려해 투표에 참여시키자는 것이었다. 각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총력전을 펼치던 때였다. 포브스의 웹마스터로 고용된 시걸에겐 또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메릴랜드州에 있는 포브스 진영의 컴퓨터 서버에 3만2천 명의 지지자와 그들의 e메일 주소가 확보돼 있는 상황에서 이를 활용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곧 모든 지지자들에게 긴급 전자우편이 띄워졌다. ‘먼저 귀하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사람들의 명단, 전자수첩, 동창회 명부를 체크하라. 그 중 아이오와州에서 사는 친구나 친척이 있으면 그들 모두에게 포브스의 웹페이지와 링크되는 메시지를 띄우라. 그 뒤 그들에게 에임스로 가 포브스에게 지지표를 던지도록 설득하라’는 것이었다. 시걸도 인정했듯 결과는 대대적인 세몰이에는 훨씬 못미쳤다. 포브스가 모의투표에서 그런 방법으로 획득한 표는 총 5천여 표 중 2백50표 정도였다. 그러나 그 2백50표는 2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포브스의 전체 득표의 의미있는 5%이자 웹 유세(e-campaigning)
의 신호탄이었다. 시걸은 “모든 게 웹을 통해 이루어졌다. 우리는 아이오와州 중심가에 또다시 선거운동 본부를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갈수록 빨라지는 인터넷 세계에서 웹 유세는 1년도 채 안되는 기간 중 신기한 것에서 필수품으로 변했다. 후보들은 웹을 게시판·광고 매체·조직 도구 등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TV는 여전히 ‘수동적’ 다수를 겨냥한 일방적 판매의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인터넷은 급속도로 ‘버추얼 뉴햄프셔’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것은 유세를 시작할 지와 포기해야 할 지를 알려주며 약삭빠른 선거운동 조직책과 유권자들에겐 서로가 찾아야 할 행동방식과 해답을 제시해 준다.

웹은 프로레슬러 출신의 제시 벤추라가 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된 지난해 정치적 성년기를 맞았다. 정당 구조나 공식적인 지지표명도 없는 가운데 출마한 그가 가진 것이라곤 명성과 거친 말투로 내거는 공약과인터넷뿐이었다. 수개월 동안 선거운동 ‘본부’조차 없었지만 그의 e메일 리스트는 불어만 갔다. 그에게 선거자금 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의 3분의 2는 인터넷을 이용했으며 그가 선거전 막판 사흘간 실시한 버스 유세조차 인터넷을 통해 조직됐다. 벤추라의 사이트는 결코 화려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네트워크는 특히 젊고 새로운 유권자들 사이에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 집단이 연령적으로 온라인 세대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는 3파전에서 30세 이하 유권자의 과반수 표를 얻었다. 벤추라의 웹마스터 필 매드슨은 “인터넷이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이 아니라 인터넷 없이는 승리할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2000년 대선 후보들은 벤추라의 성공담에서 교훈을 찾고 있다. 그들은 벤추라와 달리 외양에 신경을 쓴다. 그들은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통해 자원봉사자들의 서명을 받아내는 것 못지 않게 웹사이트 자체의 우수성을 알리려 하며 거기엔 각종 메뉴와 쌍방향 교신, 후보의 유세장면을 담은 디지털 사진들이 가득하다. 가장 정교하게 제작된 사이트는 앨 고어와 포브스의 것이다. 조지 W. 부시의 사이트는 후보 자신을 과시하는 데 가장 공을 들이는 것 같다. 온라인 정치 컨설턴트인 필 노블은 “선거유세는 후보의 면면을 반영하게 마련이지만 이 점은 웹사이트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갈수록 유권자들이 디지털화된다는 점에서 웹 유세도 충분한 호소력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캘리포니아주립대(샌타 바버라)
의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전체 성인의 절반이 직장이나 가정에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며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정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엔 3천6백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적어도 1주일에 한번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했다. 95년의 3배를 웃도는 수치다. 알래스카州를 제외하고 ‘온라인 유권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첫 예비선거가 실시되는 뉴햄프셔州다.

‘온라인’ 유세의 가장 큰 문제는 조직성이다. 고어와 빌 브래들리 후보는 유권자의 공식적인 지지표명을 확보하는 데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포브스만큼 세련된 노력을 기울이는 후보는 없다. 웹마스터 시걸에 따르면 포브스는 데이터 베이스에서 e메일 주소록을 여러 그룹으로 나눠 각 집단의 특성에 맞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인터넷을 정치적 광고에 이용하기는 어렵다. 선거결과를 좌우하는,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대다수 유권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최고의 매체는 아직 TV다. 민주당 미디어 컨설턴트 로버트 슈럼은 “결국 가장 큰 변수는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대다수 유권자들이고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TV뿐”이라며 “인터넷은 아직도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기를 요구하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정치적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서부시대의 개막은 노예제도 확산이나 자연보호 등 갖가지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 미국 정치를 변형시켰다. 사이버스페이스의 급속한 발전도 이와 마찬가지다. 인터넷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프라이버시 보호다. 그러나 웹을 통한 선거운동이 그 문제를 도리어 부각시키는 것은 역설적이다. 고어는 “인터넷을 구축한 사람은 바로 나”라고 말해 한때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의회에서 그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를 이끄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州)
도 그랬다. 고어와 매케인의 웹사이트는 최근 초당적 단체인 ‘민주주의와 기술을 위한 센터’(CDT)
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유권자들로부터 입수한 정보의 비밀 유지를 위해 기울인 성의있는 노력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부시와 포브스를 포함한 다른 후보들의 웹사이트는 그 점에선 다소 미흡했다.

인터넷에 수반되는 다른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엘리자베스 도울은 인터넷 포르노의 통제를 선거운동의 핵심 이슈로 설정했다. 고어는 현 정부가 미국 전역의 학교와 도서관에 인터넷 접속을 가능케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전화회사들이 보조하도록 한 조치를 내세운다. 부시와 포브스 등은 이것을 ‘고어稅’라고 비아냥댔다. 매케인은 그 문제에 대해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았지만 그 법안이 자신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위원회에서 통과된 뒤부터는 학교와 도서관의 전면적인 인터넷 접속 계획을 호평하기 시작했다. 포브스는 인터넷 상거래에 대한 어떤 과세도 반대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부시 등 다른 후보들의 입장은 다소 모호하지만 인터넷에 대한 새로운 규제를 지지하는 후보는 없다. 그들 다수가 받는 기부금이 바로 인터넷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익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라인 정치의 세계에서 대두되는 가장 큰 이슈는 온라인 정치 그 자체다. 캘리포니아州에서는 유권자들에게 인터넷으로 투표하게 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마크 스트래스먼은 그 문제를 2000년 11월 표결에 부치기 위해 당국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 중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유권자들이 모뎀을 통해 일찍, 그리고 자주 투표할 수 있게 되면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간의 ‘디지털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트래스먼은 기술적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며 ‘유권자들의 냉소와 무관심이 판치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더 쉽게 투표할 수 있게만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제 그에겐 5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와 동료들은 종이를 이용한 구식 방법으로 서명을 받아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을 이용해 그 과정을 단순화시킬 묘안을 짜냈다. 서명 의사를 가진 유권자를 특정 장소로 부를 필요 없이 서명자로 하여금 직접 탄원서를 다운로드받아 서명한 뒤 전송토록 하자는 것이다. 그는 “청원서가 효력을 지니려면 본인의 서명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웹을 통한 정치 세계에서는 그런 식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다.

뉴스위크 한국판(http://nwk.joongang.co.kr) 제 397호 1999.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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