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뇌출혈 투병 원로배우 트위스트 김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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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원로배우 트위스트 김(본명 김한섭·사진)이 30일 오전 10시 40분 4년간의 뇌출혈 투병 끝에 별세했다. 74세. 김씨는 2006년 9월 부산에서 공연하다 쓰러진 뒤 줄곧 병석에 누워있었다.

 1936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62년 영화 ‘동경서 온 사나이’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특히 64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김기덕 감독(76)의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엄앵란과 함께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맨발의 청춘’은 서울 아카데미극장에서 개봉돼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당시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심금을 울린 영화다. 건달인 남자 주인공 서두수(신성일)와 부잣집 딸인 요안나(엄앵란)가 신분의 차이를 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두수의 뒷골목 동생 아가리 역을 맡은 트위스트 김이 눈물을 흘리며 두수를 수레에 싣고 가는 동안 두수의 맨발이 화면에 가득 차는 마지막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빛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트위스트 김(왼쪽)이 신성일(오른쪽)씨와 함께 출연한 영화 ‘맨발의 청춘’의 한 장면.

 고인은 ‘오늘은 왕’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 ‘성난 영웅들’ ‘사랑의 종합병원’ ‘남부군’ 등 1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정창화·김수용·김기덕 등 한국 영화계의 초기 거장 감독들이 사랑하는 조연 배우로 꼽았다. 거친 듯한 개성과 특유의 애수 어린 눈빛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감성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국내에 처음으로 트위스트 춤을 소개했던 춤꾼이기도 했다. 6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트위스트 김’이란 예명을 얻었다. 노래 실력도 갖춰 여러 장의 음반을 냈 다.

 고인은 운동에도 뛰어났다.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 주최로 열린 철인3종 국내 대회에서 89년과 92년 두 차례 우승했다.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하며 “이제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어 오면서 힘들 때마다 늘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시도해왔다”고 말했다. 99년 3월에는 서울 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 ‘그 시절 그 쇼’에서 주연을 맡아 트위스트춤과 서태지춤·디스코·힙합 등 격렬한 동작을 소화해냈다. 2000년 영화 ‘그림일기’를 끝으로 은막을 떠났으며, 2005년 TV드라마 ‘맨발의 청춘’에 특별 출연했다. 한 방송에서 “내가 죽으면 청바지 입혀 화장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옥이씨와 아들 준홍, 딸 영신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쌍문동 한일병원. 발인은 2일 오전 9시. 02-901-3440.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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