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 스타 ☆ 스타

중앙일보

입력

TV를 켠다. 와르르 웃음이 쏟아진다. 요즘 잘 나간다는 댄스그룹 멤버들이 스튜디오에 무더기로 서서 무어라고 주절댄다. 다들 스무살은 넘어보이는데 말하는 투는 초등학생 수준이다.

'제네 야외촬영까지 떴어? 이제 다 됐군' '막차타고 있는 거지 뭐'

우리 PD들은 잘 안다. 유명 가수나 탤런트가 버라이어티 쇼에 자주 모습을 보이면 이제 끝물이라는 사실을. 왜냐하면 한참 잘 나가는 가수나 탤런트는 한시간씩 하는 쇼에 죽치고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간이 남는다는 이야기고, 놀리느니 한푼이라도 벌자는 매니저의 속셈이다.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린다. 이번에는 한참 뜨고 있다는 여성 탤런트다. 그녀 역시 요즘 눈에 띠게 스튜디오 출연이 잦다. '이젠 000까지도?' 그녀가 연기했던 드라마를 잘 안다. 만화같은 스토리였지만 젊은이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스튜디오에서 그녀가 말하는 화법은 정말 그녀가 배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준이 낮다. '쯧쯧.... 밑천 다 드러나는군.' 안쓰럽다.

다시 채널을 돌린다. 드라마다. CF에서 보던 예쁘장한 신인 여배우가 무슨 자동인형처럼 대사를 뇌까린다. 새로운 기대주란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는 '나, 날라리'라고 분명히 써있음에도 극중에서는 온갖 고상은 다떤다. 웃긴다. 조금 있으면 그녀도 막내리고 보조MC자리를 찾아 헤메일 것이다.

TV를 끈다. 심심하다. PC 통신에 접속해 본다. 와르르 쏟아지는 스팸광고들. '스타와 만나요', '스타 따라잡기',' 스타 000와 라이브 채팅'. 지겹다. 지겨워. 대한민국은 온통 스타의 얼굴로 도배된 나라다. 신문을 펼쳐도 스타, 잡지를 펼쳐도 스타, 스타, 스타, 스타...

그들은 나를 노려보고, 째려보고, 눈을 흘기거나 멍청히 바라본다. 그러나 메시지는 하나다. 이거 사라, 저거 사라, 사라 사라 사라...

TV에서 조금만 뜨면 바로 광고모델이 되고, 그 역도 성립한다. 연기가 개판이든, 혀가 짧든 문제가 아니다. 스타는 스타이기 때문에 스타인 것이다. 스타들도 그걸 모를리 없다. 잘 나갈 때 확실히 챙겨야하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손을 댄다. 댄스그룹이 컴퓨터책까지 쓰는 나라는 아마 대한민국이 유일하리라.

요즘 스타는 대중들에 의해 사랑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팬들로부터 소비되는 상품이다. 철저히 기획된 소모품. TV는 그걸 사고 기획사는 판다. 팬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요즘의 젊은 스타들이 매니저로부터 받는 대접을 직접 목격하신다면 무척이나 실망하실 것이다.

그들은 독립된 주체가 아니다. 오로지 흥행을 위해서만 제조된 상품. 그래서 철저하게 조련된 스타에게 열광하는 것은 마치 서커스의 곰에게 열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관객이 곰의 재주에 슬슬 지겨움을 느끼는 눈치를 보이면 조련사는 잽싸게 곰을 우리에 가두고 이번에는 물개를 끌고 나오면 되는 것이다. 그런식으로 수많은 스타들이 떴다가 소리없이 사라져갔다. 그 수많은 별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스타가 축적되지 못하고 소비되는 문화에 희망은 없다.

대한민국에 진정한 스타가 나오기 위해서는 팬들의 변별력이 절대로 필요하다. TV가 아무리 요란하게 떠들어도 '너는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주관. TV가 아무런 눈길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동호회를 만들고 밀어줄 수 있는 식별력. 여러분의 눈은 사실 TV보다 예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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