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이슈] 밑도 끝도 없는 6월 위기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한반도 6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6월 말까지 북한이 6자회담 테이블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대북 제재에 착수하고 이에 북한이 반발, 한반도에 일대 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이 위기설의 골자다. 특히 이 위기설은 최근 '북한 지하 핵실험설' 보도와 맞물려 6월 전쟁설로 증폭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번지는 6월 위기설의 실체를 짚어보았다. 편집자

◆ 진원지는

위기설이 으레 그렇듯이 이 또한 진원지가 뚜렷하지 않다.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에 미국과 일본 관리들의 언급이 더해진 뒤 언론의 그럴싸한 관측과 뒤섞여 6월 위기설로 발전, 인터넷 등을 통해 떠돌고 있다. 굳이 진원지를 찾는다면 북한의 '2.10 핵 보유 선언'이다. 이어 3월 18~21일 한.중.일을 순방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끝내 6자회담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언론은 이를 미국이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 대북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또 6자회담의 일본 측 협상 대표인 사이키 아키타카(齊木昭隆)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심의관도 3월 하순에 "6월까지 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안보리에 넘긴다"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언급과 6월이란 시점이 베이징에서 3차 6자회담이 열린 지 12개월 된다는 점에서 언론은 6월을 워싱턴의 북한에 대한 인내가 바닥나는 한계시한으로 간주했다. 여기에 군사평론가 지만원씨 같은 인사는 지난 2일 "5, 6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날 확률이 90% 이상으로 본다"고 주장, 위기설에 '군불'을 때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전문가는 6월 위기설이 하나의 추측에 불과할 뿐 구체적인 정보에 근거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 국무부 대북 협상 대사 출신인 잭 프리처드도 지난달 19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6월 위기설은 추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 올해가 더 위험?

그렇다고 한반도가 안전한 것은 결코 아니다. 북폭 일보 직전까지 갔던 1994년 6월 1차 핵위기를 겪은 당국자들은 어쩌면 지금이 그때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라고 우려한다. 미국의 대북 협상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가 최근 펴낸 책 '북핵 위기의 전말'에 따르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1년 전 영변 핵시설을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세부계획을 짜고 있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10만명에 달하는 서울의 외국인 철수 계획을 세워놓기도 했다. 당시 미국이 북폭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고 8000개의 핵연료봉 다발을 뒤섞었기 때문이다. 연료봉을 뒤섞게 되면 북한이 과거 얼마나 핵물질을 추출했는지 알아내기가 어렵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객관적인 상황은 지금이 훨씬 더 위험하다. 북한은 지난해 6월 6자회담을 중단한 이래 핵 보유 선언(2월 10일)→원자로 가동 중단(4월 7일께)→동해로 미사일 발사(5월 1일)→함경북도 길주에서 지하 핵실험 징후 포착 (뉴욕 타임스 6일자) 등 차근차근 위험 수위를 에스컬레이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94년 1차 핵위기가 노란색 위기 상황이라면 지금은 거의 오렌지색 위기 상황이다. 게다가 클린턴은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했던 민주당 정부인데 반해 현 부시 정부는 이라크전을 통해 '손에 피를 묻힌' 공화당 정부다. 외교 전문가인 김경원(고려대)석좌교수는 "지금은 북한과 미국이라는 두 대의 기차가 마주보고 달려오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위기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제네바.이라크.파키스탄 시나리오

전문가들은 북한 핵 문제가 향후 제네바.이라크.파키스탄의 세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에 따라 전개될 것으로 전망한다. 첫째 제네바 시나리오는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극적인 반전을 통해 6자회담 테이블로 복귀하고, 나아가 미국과 '북.미 제네바 합의 Ⅱ'를 맺는 상황이다. 이 경우 북한은 단계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평양과 워싱턴은 외교관계를 수립한다.

제네바 시나리오가 해피엔딩이라면 이라크 시나리오는 비극적 결말이다. 미국과 북한이 정면 충돌하는 경우다. 그 결과 김정일 정권은 붕괴하지만 한국도 상당한 피해를 보게 된다. 94년 미 행정부가 내부적으로 검토한 시뮬레이션(모의실험)에 따르면 전쟁 발발 3개월 내 한국군은 30만 명이 사망하고 북한군은 거의 전멸하며 민간인 사상자는 예측불가로 나타났다.

파키스탄 시나리오는 북한이 핵실험 실시 직후 미국으로부터 경제 봉쇄를 당하지만 몇 년 후 핵클럽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경우다. 미국은 98년 5월 핵실험을 실시한 파키스탄에 대해 경제 봉쇄를 취했으나 2001년 9.11사태 직후 제재를 슬그머니 해제했다. 주미대사를 역임한 한승주 고려대 교수는 "북한은 이제 자신이 핵무기 보유국가임을 기정사실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핵실험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2005년도 한반도의 운명은 영화광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최원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