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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미술전시관 '시간의 선분'展

중앙일보

입력

좋지 못한 기억은 좋지 않으므로, 좋은 추억은 설령 그것이 아무리 좋더라도 이미 저 편으로 지나가버린 일이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대개 씁쓸한 회한을 남기게 마련이다.

오래된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도 그러하지 않을까. 지난 1일부터 서남미술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시간의 선분' 전은 14명의 사진작가 작품을 타임머신 삼아 떠나는 달콤씁쓸한 시간여행이다.

선분(線分) 이란 다 알고 있는 대로 두 개의 점을 잇는 선을 뜻하는 수학용어. 여기서는 사진을 한 시점과 다른 한 시점을 잇는 일종의 선분에 비유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승현 큐레이터의 말을 빌리자면 "셔터를 찰칵 하고 누르는 순간을 하나의 점으로, 그 사진을 바라보는 현재를 다른 하나의 점으로 봤을 때, 두 점을 연결하는 선분이 되는 것이 사진이다.

한 장의 사진은 두 시점 사이에 흘러버린 시간을 채우고 있는 숱한 사건들과 일체의 감정을 함축하고 있다" 는 것이다.

참여작가는 강운구.김기찬.배병우.김수남.정주하.강용석.권태균.윤건혁.이윤지.박병규.류은규.김석중.한정식.최광호씨. 이들이 내놓은 90여점의 작품은 대부분 동일한 대상을 시차를 두고 찍은 것이라 흐르는 시간의 육체성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의 95년과 99년 풍경(강용석) , 73년 12월31일과 74년 1월1일의 을지로.명동이 보여주는 세밑.연초의 대조적 모습(강운구) , 마포구 도화동 소년 재국이의 10년 사이의 변모(김기찬) , 청학동 댕기머리 소년이 나이가 차 결혼식을 올리기까지(류은규) ,가수 김민기의 결혼부터 소극장 '학전' 개관까지(김수남) 등 사는 모습의 변화와 더불어 등장인물 뒤로 흘러가는 시대의 변화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이 전시는 정주하씨가 "시차를 두고 똑같은 장소나 인물의 모습을 대비시키는 것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 이라고 사진집에서 지적했 듯 일견 단순한 기획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 정씨의 "얼마나 스스로의 삶에서 시간을 의식하고 살았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라는 물음처럼, '시간의 예술' 이자 '시간의 기록' 인 사진을 찍는 작가들이 스물스물 흘러가는 시간의 이동에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했는지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전시와 함께 발간된 사진집에는 출품작과 함께 소설가 성석제씨의 산문 '시간과의 연애' 가 실려 있다. 28일까지. 02-3770-3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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