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의 경제세상] 한·미 FTA, 그래도 타결하는 게 이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4호 02면

11월은 원래 스산한 절기다. 헤르만 헤세가 ‘11월’에서 “안개 낀 나날이 불안과 근심을 깨운다. 이별이 울고 세상은 죽음으로 가득하다”고 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올해 이 땅의 11월은 더욱 서럽다. 연평도 포격으로 무참히 스러진 주검에 대한 울분과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던 무력감이 더해져서다. 그런데 이 11월에 또다시 우울한 얘기를 보태려니….

1980년대 중반부터 대략 10년 동안이었다. 이 기간 내내 미국은 우리더러 시장을 열라고 강압했다. 일부 품목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으며, 단순한 문 열기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법 조문과 정부 조직까지 바꾸라는 압력이었다. 목재를 팔아먹을 요량으로, 화재 위험 때문에 고층 건물에 목재 사용을 금하던 우리의 건축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소시지 유통 기간을 늘리기 위해 식품 규정도 바꾸라고 압박했다. 특히 담배와 자동차, 쇠고기와 쌀에 대한 개방 압력은 대단했다. 정부 조직이었던 전매청을 없애라고 윽박질렀고, 자동차 관련 세제를 손질하라고까지 했다. 자신들도 실시하던 농업보조금을 폐지하라며 농산물 시장을 즉각 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개방 압력의 전위부대가 미국 무역대표부(USTR)였다. 이곳의 대표가 95년에 보낸 서한을 보면 기가 막힌다. 우리 정부 관리가 미국 차를 선전하고, 우리 언론인이 미국 차를 구입하도록 논설을 쓰고, 우리 정부가 미국 차를 위한 소비자상담실을 마련하라는 식이었다. 가당치 않았지만, 어쩌랴. ‘세계 위의 미국’이던 시대였으니…. 힘에 부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대문을 활짝 열어야 했다. 하긴 세상은 사리나 협의가 아닌, 강대국의 말발과 그 뒤에 숨은 폭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 아니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요구도 마찬가지다. 2007년 4월 타결된 FTA 협상에서 미국 측 대표가 USTR이었다. 그 USTR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 협상을 이젠 “불만족스럽다”며 재협상을 요구하니 말이다. 백악관 대변인이란 사람은 “한·미 FTA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미국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최상의 협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조만간 한국 대표단이 재협상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면 어떤 압력을 넣을지 능히 짐작된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한·미 FTA는 반드시 타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글프지만 그게 그나마 우리의 이익을 챙기는 차선의 방책이라서다. 3년여 전 합의문에서 좀 더 양보해서라도 타결시켜야 한다고 보는 이유는 이렇다. 무엇보다 중국에의 지나친 의존이 우려돼서다. 중국은 2005년께 미국을 제치고 우리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등장했다. 이런 추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 강해졌다. 2008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한국의 경제 성장 중 52%가 중국과의 교역 효과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중국이 또 하나의 상전으로 등장했다는 얘기다. 이를 해결하는 방책으론 미국을 지렛대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 브라질·인도 등의 다른 대안은 먼 후일의 얘기다. 또 하나는 미국의 보호주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개인도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여유가 생기듯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경제가 잘되면 다른 나라들을 덜 쪼았다. 하지만 반대 상황에서는 늘 보호무역과 시장 개방을 들고 나왔다. 미국이 금융위기에서 회복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미국이 들고 나올 무기는 자명하다. 80년대 중반처럼 보호무역과 개방 압력일 게 분명하다. 그때는 FTA 재협상 테이블에서보다 더 많은 요구를 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한·미 FTA는 타결돼야 한다.

물론 이 글이 부를 ‘오해’를 모르는 건 아니다. ‘설령 양보할 땐 하더라도 협상 테이블에선 끝까지 버텨야 하지 않느냐’는 반문에 답변이 궁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선시돼야 할 건 눈앞의 자존심이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익이 아닐까. 불량배의 다리 밑을 기어가면서 훗날을 도모했던 한신의 지혜가 생각나는, 정말 우울한 11월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