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훌륭한 승자보다 훌륭한 패자 되기가 더 어렵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4호 08면

톰 왓슨이 라운드를 마친 후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고 있다. 왓슨은 “이번이 선수로서 나의 마지막 일본 방문이 될 것 같다”며 “이를 기념해 은퇴 직전의 골프장 하우스 캐디와 함께 라운드했다”고 말했다. 여성 캐디가 있는 일본의 골프 문화를 마지막으로 느껴 보겠다는 의미다. [던롭 스릭슨 제공]

젊은 시절 그의 별명은 허클베리 딜린저(Huckleberry Dillinger)였다. 장난기 넘치는 표정에 주근깨가 많고 앞니 틈이 약간 벌어진 그의 모습이 허클베리 핀을 닮았기 때문이다. 또 결정적 순간이 되면 그의 표정은 킬러처럼 날카로워지고 코스 전략은 매우 치밀했는데 미국 언론은 지난 세기 초반 은행은 물론 경찰서까지 수시로 털고 두 차례 탈옥에도 성공한 전설적인 살인강도 존 딜린저를 대입시켰다. 모순된 두 얼굴을 가진 주인공은 톰 왓슨이었다.

메이저 8승 톰 왓슨에게 배우는 골프의 지혜

61세의 노신사가 된 왓슨은 21일 일본 미야자키의 피닉스 골프장에서 끝난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아직도 그의 얼굴에 천진난만한 허클베리 핀은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냉혹한 킬러 존 딜린저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코스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얻은 지혜가 묻어났다.

과거 그의 옆에는 키가 크고 깡마른 캐디 브루스 에드워즈가 있었다. 30여 년을 왓슨과 함께한 에드워즈는 그의 보스처럼 걸음이 경쾌하고 빨랐다. 그린에서 왓슨이 볼을 마크한 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등 뒤로 공을 던지면 에드워즈는 기다렸다는 듯 넙죽 받아 수건으로 닦고 왓슨의 손에 건네곤 했다. 이것이 왓슨·에드워즈 콤비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2004년 마스터스 기간 중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떴다.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에서 그의 캐디는 키가 작은 데다 나이가 지긋해 허리까지 약간 굽은 일본 할머니였다. 가방을 메지 않고 트롤리로 끌었는데 옛날만큼 걸음이 빠르지 않은 왓슨을 쫓아다니기도 버거워 보였다. 왓슨에게 캐디에 대해 물었다. 왓슨은 “이번이 선수로서 나의 마지막 일본 방문이 될 것 같다”며 “이를 기념해 은퇴 직전의 골프장 하우스 캐디와 함께 라운드하고 있다”고 했다. “젊고 덩치가 큰 캐디가 낫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신의 전성기에 활약했던 영국의 밴드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노래 제목인 “올드 앤드 와이즈(old and wise)”라는 한마디를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메이저 대회 8승을 하고 지난해 60세로 메이저 대회인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다퉜던 왓슨을 기자회견장과 라운드 후 클럽하우스에서 틈틈이 만나 그의 오래된 지혜에 관해 들었다.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는 일본에서 가장 큰 대회다. 역대 우승자는 타이거 우즈, 리 웨스트우드, 파드리그 해링턴, 데이비드 듀발, 세베 바에스트로스 등 화려하다. 왓슨도 1980년과 97년 우승했다. 왓슨은 13년 만에 돌아온 코스에서 20대 선수들과 겨뤄 무난히 컷을 통과했고 4오버파로 38위에 올랐다.

일본 기자들은 10대 스타 이시카와 료와 비교하면서 코스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왓슨은 “겉보기에 긴장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을 뿐 속으로는 똑같이 압박감을 받는다. 가끔은 정도를 넘어갈 정도로 심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왓슨은 또 “긴장은 골프라는 게임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여야 하고 다른 경쟁자들도 비슷한 감정 속에서 경기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투어에 처음 나온 뒤 몇 년 동안 우승 기회를 날려 버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긴장감에 약한 선수로 평가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이를 극복한 것이다. 기자는 그래서 1라운드를 마친 뒤 클럽하우스에서 긴장감을 이기는 법에 대해 한 번 더 물었다. 그는 “젊었을 때 내가 우승을 많이 날렸기 때문에 어떤 선수는 ‘왓슨이 흘린 돈을 주워 가는 게 즐겁다’고 수군대기도 했다. 그러다 75년 디 오픈에서 다른 선수가 실수하는 바람에 약간 행운의 우승을 했다. 첫 메이저 우승을 하면서 배운 가장 큰 지혜는 최고의 스윙을 하지 못할 때도 영리하게 경기해 스코어를 줄이고 이기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큰 대회에서 압박감 속에서 경기해야 그걸 알 수 있고 그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그는 77년 마스터스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마지막 라운드 16번 홀에서 당시 최고 선수인 잭 니클라우스가 추격해 공동 선두가 됐는데 너무나 긴장해 펄쩍펄쩍 뛸 지경이었다. 평정심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파 3인 16번 홀에서 평소 이 거리에서 쓰던 6번 아이언이 아니라 5번 아이언을 잡았다.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스윙을 하는 데 집중했다. 머리를 고정하면 긴장감 속에서도 밸런스를 유지하게 하고 팔이 스윙을 잘 하도록 도와준다. 볼이 날아가는 것을 보지 않았는데도 좋은 샷인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몸속에 있는 압박감이 빠져나갔다. 이 홀에서 파를 하고 17번 홀에서 버디를 해 2타 차 우승을 했다. 니클라우스는 18번 홀에서 보기를 했는데 내가 17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터진 커다란 환호 때문에 부담이 커져 실수한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결국 16번 홀에서 머리를 고정한 게 첫 그린재킷을 입은 결정적 이유가 됐다.” 그는 이때 얻은 자신감으로 그해 턴베리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니클라우스와 한 조에서 맞붙어 한 타 차로 승리를 거뒀다. 그것이 골프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라운드로 평가되는 듀얼 인 더 선(duel in the sun)이다.

왓슨은 “한국 선수들은 모두 열심히 연습하고 스윙이 좋다”고 칭찬했지만 “이기는 방법을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도 했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세계 어디서든 잘하고 있지만 남자 선수들은 국내 투어에서 압박감 속에서 이기는 법을 배운 뒤 세계로 나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휴식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나는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낼 때도 한꺼번에 2주 정도는 집으로 돌아가 쉬었다. 신경이 곤두서는 투어라는 무대에서 내려와 사랑하는 가족·친구들과 함께 있는 따뜻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 내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오랫동안 활동하는 비결이 이런 휴식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휴식은 골프선수는 물론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도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왓슨은 자신의 드라이브샷 거리는 캐리만 250야드라고 했다. 여기에 런을 더한 것이 그의 실거리다.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에서 드라이버로 쳤을 때 그의 거리는 270야드에 약간 못 미쳤다. 그러나 벙커 등 함정을 피하려 드라이버를 치지 않는 홀도 있었기 때문에 기록상 그의 평균 거리는 250야드였다. 컷을 통과한 62명 중 59위였다. 그러나 그는 순위에서는 38위를 했다. 아이언 때문이다. 그의 대회 그린 적중률은 26위(63.9%), 4라운드에서는 2위(83.3%)로 올라갔다. 그는 “드라이버 거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확한 아이언 거리가 코스 매니지먼트의 핵심이며 위대한 플레이어의 가장 큰 조건이다. 아이언의 거리가 일정하지 않은 선수는 일관된 성적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아마추어 골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는 매우 안전한 골프를 했다. 그는 4라운드 내내 벙커에 두 번만 빠졌다. 우승자인 이케다 유타는 아홉 번, 2위인 김경태는 여덟 번 빠지는 등 대부분 다섯 차례 이상 벙커에 들어갔다. 그러나 왓슨은 벙커와 멀찍이 떨어져 지내고 그린 가운데를 공략하는 전략을 썼다. 왓슨은 “두 차례 우승했고 오랜만에 나온 대회에서 컷 탈락을 하면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 안전하게 공략했다”고 말했다. 그가 우승한 13년 전에 비해 코스는 길어지고 그린은 빠르고 딱딱해졌다. 그는 연습라운드에서 여러 클럽으로 공을 쳐 보면서 그린에 안전하게 볼을 올릴 수 있는 공략법을 테스트했다.

왓슨은 아마추어들의 아이언에 대해서도 충고했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는 실제 거리보다 자신의 아이언 거리를 길게 생각한다. 습기가 많은 날이거나 맞바람이 불거나 오르막 그린일 때 긴 클럽을 잡아라. 긴장감이 클 때도 마찬가지다. 혹시 이런 조건들이 겹쳐질 경우 더 긴 채를 잡아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우승 경쟁을 한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18도 하이브리드를 25번이나 쳤다”고 했다. 티샷도, 페어웨이에서도, 러프에서도 쳤다. 그는 “스윙 스피드가 대단치 않을 경우 롱아이언보다 훨씬 쉽다”고 말했다.

주말 골퍼는 매번 다른 그린에서 라운드하게 된다. 그는 “새로운 그린에 적응하는 것은 터치감을 새로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가르쳐 준 연습법은 이렇다. 50피트(약 15m) 정도에서 타깃을 정해 놓고 테이블 하나 정도의 크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퍼트 연습을 한다. 긴 퍼트를 하다 보면 그린의 특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약간 경사지에 있는 약 1.5m 거리의 홀을 목표로 여러 방향에서 홀인시키는 연습을 한다. 오르막, 내리막, 옆 브레이크 등 여러 상황에서의 감각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어떤 그린에서도 자신감 있고 좋은 퍼트를 할 수 있다. 그린을 눈이 아니라 발로 읽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다. 볼에서 컵까지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다. 경사를 바로 위에서 눈으로 보고 발로 느껴 본다. 그린과 일체화되는 감이 오면서 자신감이 따라온다.

그는 경기 중 화를 내지 않는다. “나쁜 샷을 하고 난 뒤엔 나 자신에 대해 화가 날 때도 많다. 그러나 한 번도 화를 내지는 않았다. 화를 낸다고 해서 잘못된 샷의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잘못된 샷은 연습장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가 많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그와 가장 뜨겁게 싸웠던 니클라우스다. 왓슨은 “코스에선 이기기 위해 싸웠지만 우리 둘 모두 패배해도 상대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며 “좋은 승자가 되는 것보다 좋은 패자가 되는 것이 훨씬 어렵고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페인 스튜어트 상과 바이런 넬슨 상을 받았다. 스튜어트 상은 골프의 정신을 지킨 사람에게, 넬슨 상은 인류애를 실현한 골퍼에게 주는 상이다. 왓슨은 “특히 바이런 넬슨 상의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현역 시절 11연승 등의 기록을 남기고 30대에 홀연히 은퇴해 목장을 짓고 산 넬슨은 왓슨의 멘토였다. “24세이던 74년에 처음 만난 넬슨은 골프와 인생의 모습을 알려 준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